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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Nov 23. 2022

미저리 모닝 (Misery Morning)

5시, 졸린 눈을 비비고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글을 쓴다. 마치 잠을 쪼개고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 계발을 하는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사람 같다. 하지만 새벽에 눈이 뜬 건 결코 내 의지가 아니다. 우울한 뇌가 수면유도제까지 합류한 잠의 장벽을 뚫고 깨어난 것이다. 어쩐지 어젯밤에 잠을 자는 것이 조금 무서웠는데, 일종의 예지였나 보다. 수면유도제를 먹고 5시간 정도를 잔 셈이니, 아마 먹지 않았다면 2~3시부터 깼을 것이다. 


누군가는 내심 억지로 일찍 일어나는 것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의지로 겨우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을 저절로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억지로 생긴 새벽을 어떻게든 생산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운동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지금처럼 글을 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대가가 컸다. 하루 종일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일상생활이 어려웠고, 버티다 낮잠이라도 자게 된다면 다음날 다시 깨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잠이 안 오더라도 일단 누워있는 게 그나마 하루 전체의 생산성을 생각하면 우월한 전략임을 깨달았다.


원래는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 그걸 좋아했다기보다는 수고와 노력이 많이 드는 일을 아침에 머리가 맑을 때 해치워버리는 걸 선호했다. 대학에서 주 5일 1교시 수업을 들었던 학기가 있었다. 조금 일찍 일어나니 오후는 전부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부득이 일이 남으면 야근보다는 일찍 출근해서 처리하려고 했다. 하루 종일 일에 지쳐서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붙잡고 남아있는 게 너무 싫었다. 물론 몇 사람은 일도 마치지 않았는데 집에 가버린다며 언짢아한다는 사실을 건너 건너 듣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자유 의지가 아닌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일 뿐이다. 커피 한 잔 마시면 각성해서 생산적인 하루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절대 마시지 않을 것이다. 우울증 약의 효과인지 카페인이 몸에 들어오면 강하게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그 카페인이 떨어지면 갑자기 축 처지는 것이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는' 느낌이 들어 장기적으로 결코 건강하지 않아 보인다. (우울증 초반에 관련된 다짐을 적어보기도 했고 말이다)


어쨌든 오늘은 5시에 눈을 떠버렸다. 오전 10시에 있는 드로잉 클래스는 집중을 할 수 없을게 뻔하기에 연기를 신청했다. 글만 쓰고 다시 침대에 누울 거라, 세수도 안 하고 비몽사몽이다. 정신이 맑아지면 부끄러운 글이 되지는 않을까. 그렇지만 한 번은 억지로 눈이 떠지는 이 '미저리 모닝'에 대해 솔직하게 써 보고 싶었다. 이제 다시 잠자리로 돌아가야겠다. 오늘은 우울에게 불면을 바쳤으니, 내일은 우울이 나에게 숙면을 바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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