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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Dec 30. 2020

마음의 눈으로 자기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0년 12월 30일 한국으로 돌아와 맞이하는 생일에

십 년 전인 2010년에 한창 회사가 어려웠을 때 저 혼자 큰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하는 짐을 떠안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섭섭한 마음과 실수하면 큰일 날 거 같은 두려움과 나는 계속 남아 있어도 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몸에 쌓여 얼굴로 드러나게 됐습니다.


백반증.

마이클 잭슨이 걸려서 유명해진 이 병은 제 몸의 면역세포가 제 멜라닌 색소를 공격해서 없어지게 하는 증상입니다. 색소가 없어진 피부에서는 털도 하얗게 새더군요. 그래서 한쪽 눈썹만 하얀 백미(白眉)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얼굴이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신경 쓰였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고 남들이 어떻게 볼까 두려웠습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는 일은 참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프랑스에서 출장 온 손님이 있었는데 얼굴에 화상 자국이 가득한 분이셨습니다. 업무 회의를 다 마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그분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당신도 보다시피 나도 당신과 같은 아픔이 있습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두렵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런 두려움을 이겨냈습니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You are the one as you are. It is not from what you look like.

그렇습니다. 나는 나. 제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어떤 사람이고 제가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입니다. 그 뒤로는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제 얼굴을 볼 때마다 되새깁니다. 제가 어쩔 수 없는 일은 억지로 붙들려고 하지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하자고. 그리고 한 번 환하게 웃어 보며 오늘 하루도 잘 살아가자고 되뇝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처럼 늘 기쁜 일만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일을 찾을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지난 십 년 동안 거울 앞에서 연습했던 미소 덕분에 저는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록 한 달에 한번 한쪽 눈썹을 염색하고 비비 크림도 바르곤 하지만 이제는 친구의 아이들이 "삼촌 눈이 왜 이래요?" 하고 물어도 웃으면서 농담으로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눈으로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참 좋습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가고 다시 맞은 생일. 다른 한쪽 눈썹도 하얗게 새서 염색이 필요 없어도 어울리는 나이가 어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듦도 이렇게 받아 들일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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