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셜 D라고 하는 자동차 경주 만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타쿠미가 모는 도요타의 AE86은 작은 수동 변속기 차량이지만 고급 자동 변속기 차량들을 능가하는 가속 성능을 보입니다. 수동 변속기가 자동보다 더 반응성이 좋기 때문에 레이싱에 참여하는 운전 좀 하는 사람이라면 매뉴얼 운전이 기본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연 지금도 그럴까요?
수동 변속기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엔진과 바퀴 사이에 회전수를 변속기 내에 있는 기어비를 통해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기계적으로 기어에 맞물려 있기 때문에 출력 손실이 전혀 없지만 차속에 따라 다른 기어로 바꿔 줄 때는 액셀에서 일단 발을 떼고, 클러치를 밟아 엔진과 기어를 분리시킨 후에 레버를 옮겨 원하는 기어로 옮겨 주는 동작을 수행해야 합니다. 동력 전달 효율이 좋아서 연비가 뛰어나고, 변속되는 시점도 운전자가 직접 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자동 변속기는 운전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클러치를 밟고 레버를 옮기는 동작을 운전자가 할 필요 없이 알아서 해 주게 하기 위해서 기계적인 기어 대신에 유압을 이용한 클러치를 사용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엔진 쪽에서 나온 출력으로 선풍기를 돌리고 바퀴 쪽은 풍차를 통해 그 동력을 전달받아서 전달하는 거죠. 중간에 잠시 끊고 다른 기어비로 교체할 때는 풍차의 날개 각도를 조정해서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다시 연결되도록 조절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예로 든 선풍기와 풍차보다 훨씬 더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연결되는 수동 변속기에 비해 전달 효율이 떨어지고 반응도 느립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수동 변속기인 차량들이 더 가속이 빠르고 숙련된 전문 드라이버들이 운전하면 정지상태에서 100 kph까지의 시간을 나타내는 제로백 기록도 더 좋게 나오곤 했었습니다. 연비도 수동 변속기에 비해 10~15% 정도 더 불라하지만 일상 주행 중에 시동을 꺼뜨릴 위험도 없고, 막히는 도로에서 계속 클러치를 뗐다 밟았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르막에서 멈췄다가 뒤로 밀려갈 위험도 없다 보니 한국 시장에서는 99%가 자동 변속기 차량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비가 중요해진 요즘은 이런 자동 변속기의 약점을 보완해 주는 새로운 시스템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DCT라고 불리는 Dual Clutch Transmission입니다. 쉽게 말하면 변속기의 구조 자체는 수동 변속기와 동일한데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옮기는 작업을 운전자가 아닌 변속기 자체가 하는 타입입니다. 그러니 수동 변속기처럼 저속에서는 기어를 자주 바꾸면서 소음도 좀 있고 울컥거림도 있습니다만, 최근에는 습식 클러치를 적용해서 반 클러치 조작과 비슷한 형태를 이용해서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하게 해 줍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자동 변속기의 단점이었던 느린 반응성과 낮은 전달 효율이 수동 변속기 수준으로 개선됩니다. 더군다나 MT 운전 중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변속 조작을 깔끔하고 빨리 하게 되니까 오히려 시간이 더 절약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속도를 겨루는 F1 경기에서도 수동 변속기이지만 버튼만 누리면 자동으로 변속이 되는 혼합된 형태의 변속기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면, 기존의 MT에서는 변속 전에 액셀 페달을 빼서 엔진 RPM을 일단 낮춘 다음에 다시 채결하고 다시 가속해야 하지만, DCT에서는 액셀은 그대로 밟은 상태에서 변속을 위한 Torque 감소는 점화시기를 지연시키는 로직으로 구현해 줍니다. (DCT의 Control Unit이 Fast Torque Reduction Request를 엔진에 보내면 엔진은 잠깐만 출력을 낮추면 되는 상황으로 인식해서 Throttle을 닫아서 공기량을 줄이는 대신에 점화 플러그의 점화 시기를 뒤로 미뤄서 비 효율적인 연소가 일어나게 합니다.) 그러면 변속 이후에 가속을 할 때 바로 본래 원했던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영화나 F1 경주에서 보면 변속하고 나서 나갈 때 배기관에서 불이 보이는 이유도 이 점화시기를 늦추면서 제대로 타지 못한 연료가 배기관에서 연소하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MT가 AT보다 더 가속이 빠르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운전자에게 더 많은 조작의 가능성을 주지만 그렇다고 그게 최선이 아닌 상황인 거죠. 어찌 보면 기술의 발달 덕분에 편하고 더 좋으면서도 뭔가 인간다운 무언가를 빼앗기고 있는 경향이 자동차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습니다. 제 첫 차였던 스쿠프 MT가 그리워지네요.
카QA센터 –
자동차에 대한 모든 질문에 답해 드립니다.
댓글로 질문을 남겨 주세요. 꼭 답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