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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에 맞는 스윙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백돌이 탈출기-08] 익숙한 야구 스윙을 버릴 수 없다면 맞춰야 겠죠?

by 이정원

제가 일생 동안 제일 많이 휘둘러 본 채가 무엇이냐고 하면 아마도 야구 배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때 동네 야구도 하고, 대학교에서 야구 수업도 들었지만, 본격적인 건 회사 사회인 야구 팀에 들어가서 였죠. 정식 구장에서 제대로 차려 입고 연습하고 경기하는 것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제가 속한 팀은 선출 하나 없이 2부 리그에서도 우승을 하던 강팀이었는데 운동 신경이 그다지 좋지 않은 제가 자리를 잡기에는 참 어려웠습니다. 결국 총무를 맡아서 공용 장비 나르고 회비 관리하고 하는 노력 봉사로 인정 받아서 마침 공석이던 3루수 자리를 물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자란 실력을 채우려고 부단히 배트를 많이 휘두르고 팀 레슨도 받고 했었습니다.

야구와 골프의 가장 큰 차이는 움직이는 공과 정지된 공을 쳐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배트 스피드가 프로처럼 빠르지 않은 아마추어에게는 느린 반응은 그 만큼 결정을 빨리해야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타석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탑 포지션에서 히팅 포인트까지 내려오는 궤적을 최대한 짧게 해야 하고 공의 속도를 이겨 내야 하니 몸도 같이 돌려서 체중을 실어야 했습니다. 거의 검도에서 사선으로 밀짚을 베어내듯 찍어 치는 훈련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몸에 뵌 습관은 세월이 바뀌고 종목이 바뀌어도 잘 고쳐지지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조금만 팔로 힘껏 휘두르려 하면 어깨가 같이 열리고, 백스윙을 한 이후에 내려오는 궤적은 너무 가파릅니다. 그나마 아이언은 채의 회전 방향을 12시-6시 수직 방향으로 가고 가파른 궤적이 채를 떨어 뜨리는 동작과 일치하기 때문에 큰 이질감은 없는데 문제는 드라이버입니다. 왼손은 왼 어깨에 달려 있는지라 늘 공보다 먼저 가 있고 그러니 헤드는 열려서 맞는데 궤적도 어퍼가 아니라 찍어치는 방향이니 악성 슬라이스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몸통 회전으로 하면 무언가 해결책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몸만 더 빨리 열리면서 역효과가 나더군요. 제 고민을 같이 들어 주시던 레슨 프로님과 제가 내린 결론은, 단기간에 고칠 수 없는 점은 두고 할 수 있는 걸 하자입니다.

일단, 어드레스에서 왼발에 무게 중심을 너무 두었던 것을 오른발 쪽으로 조금 무게를 싣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임팩트 때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스윙 궤적이 너무 가파르게 찍혀 맞는 걸 방지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둘째, 임팩트 이후에 팔로 스로우까지 왼팔에 힘을 너무 주면 왼쪽 어깨가 너무 열리니까 펀치샷처럼 팔로우가 LtoL 스윙하는 정도에서 멈춘다는 느낌으로 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 돌 필요가 없으니까 몸의 방향을 최대한 유지한 채 팔만 보내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셋째, 백스윙을 너무 과하게 하지 말고 이런 다운 스윙 궤적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공만 딱 정확히 때린다는 생각으로 공을 맞추는 순간에 임팩트만 강하게 한다는 느낌을 살리기로 했습니다. 마치 핀볼에서 잡아 당겼다가 딱 치듯이 그냥 공만 치는 겁니다.

마치 오래된 야구 만화 최훈의 GM에서 김기정이라는 파워 진퉁 타자가 정확도를 확보하기 위해 테이크백도 줄이고 밀어치는 등 여러가지 변화를 시도했던 것 처럼 정확도를 위해 익숙한 힘을 싣는 동작들을 포기한 셈입니다. 그래도 200 정도 나가니까요.


몇 번 연습해 보니까 꽤 괜찮았습니다. 스윙만으로 보자면 이전 보다 반도 안하는 것 같은데도 녹화된 장면을 보면 관성이 있어서 Follow 할 거 다 됩니다. 정타를 잘 맞으면 200 정도 나가고, 백스핀 수치도 3000에서 1800대 정도로 줄어 드는게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늘 우상향 방향으로 가던 슬라이스 구질이 많이 줄어서 푸시성 페이드나 스트레이트로 그나마 살아 남을 수 있는 형태로 조절이 되더군요.

결국 다 자기 몸에 익숙하고 편하고 맞는 스윙이 있는 거였습니다. 프로처럼 아름 다운 스윙. 공은 때리는 게 아니라 채를 휘두르는 과정에 맞는 거다. 다 좋지만, 골프는 예쁜 스윙 콘테스트를 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는 거니까요. 지피지기. 나를 아는 게 먼저인가 봅니다. 몸에 밴 나쁜 습관을 받아 들이고 저에게 맞는 스윙을 찾아 가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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