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실패라고 알아 차렸을 때가 가장 빠른 시점인데...
롯데 자이언츠의 올 시즌 포스트 시즌 도전이 사실상 마무리되었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KT전에서 6대5로 뒤진 상황에서 1사 2/3루에 김준태가 내야 플라이를 치면서 동점 기회를 날리고 금요일에 김원중이 시원하게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맞으면서 5위와의 게임 차가 다섯 게임으로 늘어났습니다. 5할은 달성했지만 포스트 시즌은 가지는 못하는 여러가지로 어수선했던 2020년의 도전은 마지막 마무리만 남았습니다.
작년에 꼴찌였던 점을 감안해 보면 사실 장족의 발전입니다. 일단 마차도를 중심으로 한 수비가 아주 탄탄해 졌고 그 덕에 투수진도 안정되면서 그래도 시즌 마지막까지 선발 로테이션이 제대로 돌아간 팀이 되었습니다. 마무리 김원중이 보직을 맡은 첫 해에 20세이브를 달성하고 애증의 3루수 한동희가 두자리수 홈런과 함께 껍질을 깼고 포수에도 김준태라는 준수한 주전 포수를 찾아낸 점도 고무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부상없이 주전들이 계속해서 뛰면서 팀이 큰 추락없이 5할 승률을 달성했다는 것이 가장 기쁩니다. 부상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선수단의 관리가 잘 되었다는 뜻이니까요. 선수단 식단을 바꾸고, 피로도에 따라 연습시간을 조정하고 여러가지 장비로 체력이나 상태를 관리하는 것이 예전의 구식 팀에서 우리도 시대에 맞춰 발전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음지에서 한 시즌 내내 고생한 트레이닝 파트들에게 수고하셨다는 응원을 드리고 싶습니다.
원래 팔월에 치고 올라 간다는 “팔치올”은 이런 시스템의 자신감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팀들이 주전들의 부상이나 체력 저하로 빠졌을 때 우리는 잘 관리한 주전들을 내세워 달려 가겠다는 계획이었죠. 실제로 8월 초에 잠깐 그렇게 달리긴 했었습니다. 그리고 살짝 설렌 롯데 팬들은 희망 고문이 다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3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째, 아무리 관리를 잘 해주어서 부상을 안 당하고 체력 관리를 잘 했다고 해도, 144게임을 매일 같이 전력을 다해서 경기를 치루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피파 같은 게임에서도 능력치가 아무리 높은 선수도 체력이 떨어지면 실제 퍼포먼스는 줄어 들기 마련이죠. 특히 8월 같이 더운 여름에 연이은 총력전은 주전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이는 수비에서의 실책 증가와 찬스에서의 지나친 긴장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8월 전까지 실책 수 1위를 자랑하던 수비 지표는 정작 중요한 8/9월에 급격히 나빠 졌습니다.
둘 째, 다른 팀에게 마이너스라고 생각했던 이탈한 주전들이 잘 쉬고 돌아오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상위권 팀들이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NC를 이끄는 양의지나 나성범도 시즌 도중에 부상으로 2~3주 빠진 적도 있었죠. 특히 여름,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에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들 이형종 / 김재환 / 채은성 같은 선수들이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탈한 주전의 빈자리를 채우는 새 얼굴들이 팀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윌슨이 비운 LG의 선발 자리는 김윤식 – 이민호 – 남호 같은 젊은 피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홍창기 같은 선수들은 기회를 부여 받으면서 새로운 리드 오프로 만개했습니다. KT의 유한준 같은 고참들은 이제 젊은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중요한 대타 자리나 강점이 있는 투수 상대 선발로 나섭니다. 그리고 모아 둔 힘으로 중요한 한방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피의 중간 수혈 없이 144게임을 그것도 코로나 때문에 밀도 있게 진행되는 시즌을 치룬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력이 100이어도 체력이 60밖에 안 남은 여포보다 체력 다 채운 무력 88짜리 젊은 관흥이 더 나은 거죠. 시즌 마지막에 투수진에 활력이 되고 있는 이승헌과 최준용을 보면 내년의 롯데의 운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40경기 시점 / 80경기 / 110 경기 시점 즈음에 투입할 새 얼굴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베이스로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계획은 감독이 혼자서 짤 수도 없고 프런트가 독자적으로 정할 수도 없습니다. 1군은 주전에 대한 유연성을 가지고 경기에 나서는 라인업에 기준은 가장 준비되어 있는 사람을 쓴다는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2군은 1군이 필요한 자원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육성을 진행해야 하겠죠. 그리고 프론트는 1군과 2군의 연결 고리가 잘 이어지는 데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데이터를 쌓고 공유하는 작업을 지원해 줘야 합니다.
올해를 돌아 보면, 민병헌과 안치홍의 부진했을 때 빨리 김재유와 오윤석을 올리는게 좋지 않았을까? 마차도의 체력이 떨어지는 기미가 보였을 때 후반부라도 백업을 활용하고 한 주에 한 경기 정도는 선발에서 제해서 휴식을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필승조인 구승민과 박진형의 구위가 떨어지면 좀 쉬어 가더라도 김대우나 고효준 최준용처럼 구위로 덤빌 수 있는 선수들을 써야 하지 않았나? 체력이 떨어진 이대호는 이병규가 복귀한 시점 즈음에서는 선발에서 제하고 중요한 순간에 대타로 나서면 더 좋지 않았을까?. 허문회 감독의 선수 기용이 늘 조금은 “쓸놈쓸”에 쏠려 있는 듯 해서 유연성이 아쉬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동희 선수의 인터뷰처럼 올 한해 1군에 있었던 선수들은 정말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 밑에서 재밌게 경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운영이 시즌 내내 가능한 것도 프론트와 현장이 서로의 선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데이터상으로는 최고의 성적을 담보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작년의 꼴찌의 패배의식을 걷어 내고 패보다 승이 많은 팀이 되는데는 분명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더 두터워진 뎁스를 기반으로 “쓸놈쓸”의 범위가 더 넓어 지기를.. 그래서 1군의 긍정적인 분위기가 팀 전체로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https://n.news.naver.com/sports/kbaseball/article/108/0002900408
남은 17경기 마지막까지 부상없이 좋은 경기 부탁드립니다. 올 한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