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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pr 01. 2021

수많은 결정 앞에서 홀로 서야 하는 '어른'의 문턱에서

2019년 6월 28일 큰 딸 수인이의 생일을 맞으며

사랑하는 수인아


열번 째 맞는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싶다. 이제는 아빠 어깨 남짓까지 키가 컸다며 자랑하는 널 보면서 선물 같이 지나간 십년을 돌아 보게 되는 구나.


우리 큰 딸. 아빠가 태어 나서 처음으로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 존재인 널 만나서 보살피고 지켜보고 다독이고 맞춰 가면서 너도 크고 아빠도 컸다


이제는 큰 키만큼 마음도 커졌지.니가 원하는 건 어쨋든 해야 하고,학교에서나 집에서도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고 이야기할거야. 너도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대해 주길 바라겠지. 하지만 어린이가 아닌 한 사람이 되는 길의 무게 또한 너 스스로 많이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난 주에 할아버지 오셔서 한창 즐겁게 지내다가도 동생과 비교하며 언니니까 참아야지 하는 이야기에 속상해 하며 아빠에게 니가 물었었지.


아빠는 장남이라서 좋았어?


글쎄, 질문을 들었던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어. 돌아 보면 대부분 부담스러웠고 너가 그랬듯이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말에 속상한 적이 많았던 거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살아 온 아빠의 삶이 싫지 만은 않구나. 힘들고 속상하고 부담스러웠던 만큼 더 살피고 더 조심하고 더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너란 존재와 마주 할 수 있게 된 걸 보면.. 장남으로서의 삶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어찌 장남 뿐이겠니.. 아빠가 싫다고 해도 광원이 삼촌의 동생으로 다시 태어 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단다. 그리고 그런 일들 때문에 때론 속상하고, 때론 안 써도 되는 마음을 쓰게 되지. 그럴거야. 너도 첫째로 태어난 것도 그렇고, 여기 중국에 오게 된 상황도 그렇겠지. 때론 원망스럽고 힘들었을 것 같아 미안하다.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너무 마음을 빼앗겨서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망치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삶이란 우리가 하루 하루 내리는 선택이 쌓여 이루어지는 거니까. 언제 일어나고, 누굴 만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무얼 배우고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인생의 큰 목표부터 사소한 일상까지 무수한 결정 앞에서 홀로 서야 하는 '어른'의 문턱에 막 들어선 우리 수인이에게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힘든 이야기 들어 주고 무엇이 되든 너의 선택을 응원해 주는 것 밖에 없구나.

사랑하는 우리 딸.

벌써 십년이네. 그래도 우리가 같이 보낸 이 보석 같은 십년의 시간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지. 언제 이렇게 컸나 아쉽지만 그래도 지나온 시간을 다시 보내기 보다는 너는 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앞으로 같이 갈 앞으로의 십년을 더 기대해 본다. 그렇게 바라던 한국 가서 생일 즐겁게 보내고 7월에 들어가면 보자. 생일 축하해..


2019년 6월 28일

처음 만난지 십년 되는 날에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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