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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Mar 21. 2021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2018년 9월 6일 중국 파견 와서 처음 맞은 아내의 생일에.


사랑하는 상인 씨.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전례 없이 약 두 달 간을 떨어져 지내다 다시 만나 이렇게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말도 문화도 사람들도 다른 이 곳이 우리 집이 되고, 아늑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제일 큰 이유는 아마도 당신이 같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곁에 없이 지내다 다시 보니, 그 빈자리가 더 크게 와 닿는 요즘입니다.


타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아마도 익숙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곳으로부터 내가 오랫동안 영향을 받아 지금의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해 준 기억들이 반갑고 그리워서 그 존재만으로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당신을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해서 같이 살아가고, 함께 아이를 키우며 주고받으며 살아간 지난 20년의 시간들 속에서 저는 그 전의 저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당신은 제게는 ‘숨 쉬는 고향’ 같은 인연입니다.


낯선 곳에 와서 지내는 시간이 쉽지 만은 않죠.? 씩씩하고 호기심 많은 당신이지만 사실 타국 살이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12년 전 파리에서 지내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우리가 온전히 건사해야 하는 아이들도 같이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시작하는 외국 생활은 긴장되고 힘들 거예요. 저 때문에 온 가족들이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자주 듭니다.


그래도 12년 전 파리에서의 1년이 우리가 갓 결혼한 부부로서 우리 서로에게 집중하고, 남들이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틀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어떻게 같이 살아 갈지를 함께 만들어 갔던 것처럼, 이번 중국에서의 3년이라는 시간도 분명히 우리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온전히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다만 그 외로움은 어쩔 도리가 없네요. 그저 당신이 저에게 그러하듯이 저도 당신에게 ‘곁에 있는 고향’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힘들 때 기대고. 쉬고. 힘 얻어서 또 한발 나서는 길에 시작이 되기를. 우리가 서로에게 시작이 되어 줄 수밖에 없는 시간이 인생 반환점을 막 도는 이 즈음에 와서. 그렇게 새로 시작하는 남은 반을 당신과 함께 갈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천천히 같이 갑시다. 생일 축하해요.

2018년 9월 6일 사랑하는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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