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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pr 18. 2021

우리는 모두 '안전한 삶'을 원합니다.

보궐선거를 참패한 민주당에게 보내는 직언

 아이가 6학년이 되면서 중학교를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는 중입니다. 입시를 향해 너무 경쟁으로 내모는 현실에서 벗어날  있는 곳을 찾다가 수지에 있는 이우 중학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4월 초에 있는 설명회도 듣고 관련된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 보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보니 아이들이 낯선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에 대해서 이우 중학교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이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도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때까지 아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고  친구들과도 부딪히고 서로 마음을 여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저는 그중에  "안전"이라는 말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존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이 위협받는 상황을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피하려 합니다. 그것이 꼭 생물학적인 생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얼마 전 제가 다니는 회사도 경영 상의 이유로 희망퇴직을 진행하면서 "과연 나는 안전한가"라는 불안감이 널리 퍼졌었죠. 서로에게 날카롭고 힘들었던 시간들은 떠나신 분들에게도 남은 사람들에게도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어제 세월호 7주기를 맞으며 우리가 그때 분노했던 가장 큰 이유도 슬픔과 함께 미안함과 불안함 때문일 겁니다. 기본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언제든 나도 그런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죠.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역사의 변곡점들은 늘 그런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를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50-60대에는 북한이 쳐들어 올까 무서웠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70-80년대에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했다가는 잡혀갈까 불안했죠. 그리고 90년대 이후 IMF를 맞고 여러 차례의 금융 위기를 겪고 나서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사회에서 나만 도태되는 건 아닌지 불안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북한이 쳐들어 오는 건 화해하고 달래면 되고, 배고픈 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 해결됐습니다. 이제는 대통령 욕을 해도 잡혀갈 걱정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그럼 나만 도태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어떻게 채워 줄 수 있을까요?


저는 이번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원인은 이 불안감을 해결할 철학적 근본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와 국정 농단을 통해 과거의 불안 요소들의 향수로 대표되는 세력을 일단 걷어 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성장으로 파이를 키워 극복하자고 이야기하는 보수 측 주장 또한 가속화된 경쟁 속에서 힘을 잃고 지난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를 가지고 민주당은 그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나만 도태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가장 많이 퍼져 있는 것이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지도 몰라 노심초사하는 '대학 입시'와 그래도 이 넓은 서울에 내 몸하나 쉴 곳이 있었으면 하는 '부동산'입니다. 그 두 주제에 대해서 180이라는 압도적인 의석 수를 가지고도 제대로 된 정책은커녕 조국 장관 문제와 부동산 전세 대란으로 자극만 했으니 민심이 제대로 수습될 리가 없습니다.


코로나 대응을 잘해서 기본적인 신체적 안전을 잘 지킨 건 잘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제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나 (사실 방역으로 봐서는 너무 해이해진 면도 없지 않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당장 경제적인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현실의 공포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이재명 시장이 내놓은 정책이 경기도민 십만 원씩 더 주는 거라니요. 정말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티가 너무 납니다.


사람이 불안한 것은 지금 위기에 있을 때가 아니라 앞으로 위기에 떨어지게 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그러니 불평등하느니 특혜니 하면서 어깃장만 놓는 불만들은 무시하고 가장 나락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임대료로 가게 운영이 안 되는 자영업자들 임대료를 내주고, 도심에 공공임대 주택들 지어서 진짜 살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고 대학에 나오지 않아도 일정 교육을 받으면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일거리와 그를 위한 전문 교육 시설을 만들어서 제일 밑에 있는 사람들을 정부가 챙기면 됩니다. 나머지는 각자의 성향에 맞춰 시장 내에서 조정되겠지만 적어도 나락에 떨어질까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좀 줄어들지 않을까요?

등산을 가도 제일 앞서 가는 사람은 제일 늦은 사람만 챙기면 됩니다. 먼길을 가는 기러기는 늘 무리에서 제일 약한 동료를 가운데 두고 챙기면서 갑니다. 그게 연대이고 그게 다 같이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런 연대 안에서 우리는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 1%만 신경 쓰는 강남 집값 오르는 건 그만 신경 쓰고 서울에 지내야 하는데 너무 비싸 못 가는 사람들에 맘을 써 주세요. 서울대 연고대 가는 수시 비율 이런 것 보다 취직도 보장되는 여러 직업학교들 관리에 더 힘써 주세요. 전 국민 10만 원 용돈 주지 말고 당장 월세를 못 내서 손해 보고 장사하는 소상공인들 월세 좀 덜 내게 하거나 세금 좀 깎아 주세요. 그러라고 180석 준 겁니다. 그리고 그러면 적어도 그 혜택을 받고 그 방향을 지지하고 그 덕에 불안한 마음이 조금 가신 사람들이 다음 선거에도 뽑아 줄 겁니다.


제 큰딸이 이우 중학교를 가고 그래서 좋은 대학을 못 가게 되더라도 그 아이가 절망하기보다 더 본인이 행복한 길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길을 열어 줄 정치인에게는 제 한 표가 아깝지 않겠지만 지금의 민주당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보궐 선거를 지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민주당 여러분. 불안하십니까? 그런 당신들을 보는 우리의 불안한 마음은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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