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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Oct 17. 2021

아이들은 변한다

소심해진 첫 아이에 대한 걱정이 문득 의미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변한다.


MBTI가 한창 유행이다. 우리 두 딸도 자주 테스트를 해보면서 첫째는 INFJ(선의의 옹호자)라고 하고 둘째는 ENFP(재기 발랄한 활동가)라고 하면서 본인의 일상과 각 성격의 특징들을 다룬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본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타고 나는 성품이 있으니 이런 분류가 일부 맞기는 할 듯하다.

첫째가 여섯 살때. 뭐든 자신있던 아이였다

그러나 사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이 둘의 성향은 정반대였다. 수인이는 유치원에서 동네에서 아이들을 끌고 놀러 다니던 외향적인 아이였었다. 우리 집에 모이면 낯선 이모 삼촌들하고 잘 놀던 아이. 자신감이 늘 넘치던 귀여운 아이였다. 반면에 수현이는 언니보다 아무래도 작은 몸에 언니의 활동량을 따라갈 수 없어서 얌전하고 차분하고 눈치를 잘 보는 둘째였다. 노래를 부르라고 해도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는 수줍어하는 아이로 기억한다.


그 3년의 시간 동안에 우리는 중국에 다녀왔고 옥수동을 떠나 광교로 이사 왔고 코로나로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직접 보지 못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변했다. 사실 그게 더 자연스럽다.


중국 국제학교에서 다국적 친구들과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친해져야 했던 첫째는 말이 좀 줄었다. 그래도 가까운 한국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도 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해 왔지만 돌아온 한국, 그리고 새로운 동네에 얼굴도 직접 볼 수 없는 가상의 친구들 사이에서 수인이는 최선을 다했지만 교류가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그 사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게 되기도 했다. 그러니 옷은 블랙만 입고, 너무 큰 소리로 말하면 수다스러워 보일까 봐 조심스럽고 집이 편한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다.


반면 둘째는 어려운 영어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에 오자 말문이 트였다. 새로 입학해서 1학년부터 시작한 터라 새로운 동네에서 친구 사귀는 것도 어렵지 않고 자연과 가까운 아파트에 사는 덕에 올챙이에 개구리에 각종 곤충들 보는 재미가 쏠쏠해 신이 났다. 매일 등교하는 2학년 2학기에는 아주 친구들하고 노는 것이 좋아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으로 서로 몰려다니면 실컷 놀고 다닌다. 당연히 신나고 적극적이고 활달한 아이로 지내고 있다.

미꾸라지도 손으로 쑥쑥 잡는 둘째. 거침이 없다.

 페이스북에서 I성향인 어느 여성분이 E인 남편으로부터 "E성향인 사람은 사람들이 자기를 기본적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듣고 평생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해 온 본인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나를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는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걸 더 거리낌 없이 드러낼 것이고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부담스러운 사람은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될 거다.


그러나 그건 기질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고난 성품도 있지만 내가 남에게 느끼는 부담감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도 어린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새로운 동네로 전학 오고, 과학고에 처음 기숙사 생활하고, 서울로 대학 입학하고 혼자 살게 되면서 낯선 환경을 접하면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늘 필요했다. 그렇게 보면 나는 전형적인 내성적인 사람이다. 지금도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좋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내가 불편한 자리를 피하지만은 않는다. 상대에 맞추어 주고 너무 안 맞는 상대는 적당히 피하는 지혜와 용기도 생겼다. 남이 어떻게 오해하든 나는 내 진심을 다하면 되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마음 상하지 않는다. 남들을 배려하고 되도록 도와 주려 하지만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순간에 되면 멈추는 법도 알게 되었다. 내가 겪고 버텨온 모든 관계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그렇게 아끼면서 같이 간다. 다행이다.


그러니 우리의 아이들이 너무 내성적인지 혹은 너무 외향적인지 아닌지 걱정하지 않는다. 다 각자의 시간이 있고 다 각자의 남에게 허락하는 벽의 높이가 있을 것이다. 그저 부모로서 그 벽이 너무 높아서 외롭거나 너무 낮아서 상처 받지 않도록 곁에 있어 주고 그 시간들을 함께 해 줄 뿐이다. 내성적인 사람은 사려 깊어서 좋고 외향적인 사람은 주저하지 않아서 좋다. 그저 이렇게 서로 주고받아 가며 그렇게 커 갈 것이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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