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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Feb 02. 2022

주부라고 쓰고 24시간 노동자라고 읽는다.

이팀장의 육我휴직 일지 - 34th day

휴직 이전에 아내가 강의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할 때 나는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이제 계속 지켜봐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각자 자기 방에 공부하러 들어가고 나면 일주일에 3~4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게 힘들다면 둘이 두고 가도 되니까 잠시 나가서 작업하고 오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필요하면 집 앞에 작업실을 하나 잡고 출근하면 어떻겠냐고 제안도 했었다.


휴직을 한 달 하고 난 지금은 알고 있다. 정말 시간이 없다는 것을. 학교를 가지 않는 방학은 더 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을 깨고 정리하고 아침을 차린다. 아침 먹은 걸 정리하고 9시에 첫 아이 과외를 시작하면 11시. 계속 공부했으니 한 바퀴 산책을 나가거나 홈트를 좀 하다 보면 어느새 12시니 점심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챙겨 주고 챙겨 먹고 정리하면 두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오후에 잠시에 짬이 나서 아내와 호수 한 바퀴 산책하고 숨 돌리고 있으면 어느덧 3시 반, 첫째와 길고양이 밥 주러 가야 하는 시간이다. 한 바퀴 더 돌고 나서 집에 오면 출출하다는 둘째 녀석 간식 챙겨주고 나면 저녁 식사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다시 두 시간.. 식사 마치고 산책 겸 동네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하고 오면 아홉 시. 놀아 달라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1월 초에 거창하게 세웠던 글쓰기 목표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처음에는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가 장염을 한 번 앓고 난 이후에는 조금 내려놓았다. 애초에 육아 휴직을 시작한 이유가 글쓰기는 아니지 않았던가. 적어도 1월 한 달간은 놀아 달라면 놀아 주고, 같이 나가자고 하면  (아니면 나가기 귀찮아하는 가족들을 끌고) 나가고, 식사 때마다 이런저런 식사를 차려 본다. 요리해서 맛나게 먹는 모습을 즐기며.. 그렇게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2월. 설날까지 한 달을 보내고 난 뒤에 찾은 온전히 내 시간인 이 아침에 글을 쓴다. 마음을 모질게 먹지 않으면 눈에 계속 뜨이는 집안일은 끝이 없고, 우리 집 세 여자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나를 필요로 한다.  돌아서면 다시 배고프고 그래서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 하는, 그 끝이 없는 주부의 삶 사이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길을 찾기. 한 달이 지나도 그 길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같이 하면 부담이 덜하고 일정이 짜여 있으면 덜 신경 쓰이고 꾸준히 운동하고 내 시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1년이 지난 후에 다시 이 짐을 지게 될 아내에게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지금 나는 우리 가족이 다 같이 행복해지기 위한 제일 중요한 프로젝트를 지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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