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Feb 03. 2022

여자든 남자든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이팀장의 육我일지 - 35 days

요즘은 "센 언니"들이 대세다. 스우파라고 불리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는 스웩 넘치는 언니들이 나와서 멋짐을 뽐낸다.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대세 드라마에는 그동안 여러 번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정조와 의빈의 이야기이지만 늘 순종적이고 정조 바라기인 여주인공 대신에 왕의 여인이 되는 것보다 본인의 자유와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캐릭터가 환호를 받았다.


경향 신문 이용균 기자님이 소개해 주신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했나" 시리즈를 보면서 마음이 뭉클했다. 나쁜 일이 파도처럼 왔지만 도망치지 않았다는 어머니는 그 어려운 시간을 버텨 오셨다. 여느 다른 남자 어른들의 고생담과 다른 부분은 이야기하시는 중간중간에 본인이 하셨던 일과 가족들 돌봤던 (지금도 돌보시는) 이야기가 섞여 있다. 내가 휴직을 하면서 하나를 멈추고서야 겨우 하는 일을 평생 다른 일들과 함께 해 오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UuPV7FEVmU 


두 딸의 아빠인 나는 이런 여성 인권 신장의 움직임이 반갑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본인의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 옛날이야기가 되고 있다. 적어도 우리 딸들이 커서 사회에 나올 때는 더 많은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여성 인권이 신장하더라도 만약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임신과 출산 그리고 신생아 육아라는 과정을 여자라면 피할 수는 없다. 물리적인 시간의 단절과 그로 인한 이해의 상충.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언제 자리를 비울지 모르는 여성 인력의 불확실성은 분명 위험 요소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하는 엄마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버는 돈을 다 가져다주면서 아이를 맡기고 힘든 커리어를 계속 이어가거나, 차라리 내 아이를 내가 제대로 키워 보겠다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어제 아이들과 유퀴즈를 같이 보는데 여든이 넘어서도 지하철 택배 일을 하시는 어르신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일은 삶의 전부죠. 기억할 만한 하루를 선사하는 소중한 활동입니다." 그리고 이어 나온 박완서 작가님의 큰 딸 호원숙 작가님도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그냥 엄마였죠. 그러다가 나이 마흔에 등단해서 작가 활동을 하셨습니다. 제가 기자 생활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관두고 있을 때, 제게 본인의 연대기를 부탁하시면서 "네가 그렇게 애만 키우고 있으면 안 된다. 그리고 너는 할 수 있다."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육아 휴직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현실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물론 결혼을 하는 것도 아이를 가지는 것도 본인들이 선택할 문제이지만) 여성으로서의 커리어를 이어 가면서 하루하루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박완서 작가님 본인이 그렇게 마흔의 나이에 등단하셨던 것을 보고 호원숙 작가님도 쉰의 나이에 다시 펜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책임감과 성실함을 보고 배웠듯이 우리 아이들도 우리 부부의 삶을 보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 갈지 고민할 것이다. 적어도 육아 휴직이라는 이 이벤트를 통해서 남편과 아내, 집안일과 육아라는 일의 고전적인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되겠지.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 참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부라고 쓰고 24시간 노동자라고 읽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