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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ul 06. 2022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듯이 성장도 둔화될 수밖에 없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 5장 성장의 종말.

올해 들어 전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성큼 다가왔다. 그동안 코로나를 핑계 삼아 제로 금리로 돈을 펑펑 찍어내던 나라들이 이제는 그 역풍을 걱정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라며 전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오던 중국이 주춤하면서 주식에 열광하던 동학 / 서학 개미들도 점점 시장을 떠나고 있다. 정말 성장은 끝나는 것인가?


사실 인류 역사상 1900년대 후반의 성장은 유래를 찾기 어렵다. 이 시기 동안에 1인당 노동 시간이 오히려 줄어들었지만 노동자의 교육 수준은 개선되고, 전기와 내연기관이 생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면서 노동 생산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사람들은 전보다 더 잘 먹게 되었고, 겨울을 더 따뜻하게 여름을 더 시원하게 보내고 더 건강하고 오래 살게 되었다.


그러나 1973년 즈음 석유 파동이 일어나면서 전 세계 경제는 주춤한다. 이후에도 성장을 계속했지만 1920년~1970년 시기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게 된다. 컴퓨터를 통한 IT 혁신이 새로운 원동력이 될 거라는 청사진이 있었지만 1990년대 말에 잠깐 반짝하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성장률은 다시 1970년대의 안 좋은 시절로 돌아갔다.  


한 나라의 경제 성장에는 (특별한 혁신이 없는 한)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거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한정된 노동력 상황에서 자본을 투자해서 기계를 들인다고 해도 더 이상 투자 대비 수익이 증가하지 않는 임계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논리로 자본이 희소한 가난한 나라에서는 경제 성장 속도가 빠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자본과 노동이 대략 동일한 속도로 성장하는 '균형 성장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러면 성장 속도는 노동 인구에 좌우되면서 둔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프레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차원을 넘어서는 신기술의 도입이 필요하고 이런 창조적 파괴를 유도하기 위해서 실리콘 밸리 같은 클러스터가 세계 곳곳에 세워졌다. 숙련 기술과 역량이 서로 발판을 삼아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낼 거라는 기대로 만들어지는 여러 도시 단위의 투자들은 분명 지역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혁신의 초기 성과는 장기적인 원동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금세 수그러 들었고, 한 지역의 성장이 국가 전체의 성장을 담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낙수효과 운운하며 자주 언급하는 조세 감면이 효과가 없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IMF / OEDC / 시장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유명한 시카고 대학 경영 대학원 연구 결과에서도 부유한 사람에게 세금을 깎아 주는 것이 경제 성장을 가져다주지 않다는 것은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통해 확인했다. 보통 기업들은 이미 자본 투자를 통해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생성성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황이기 때문에 세금 감면을 통해 더 많은 돈을 세이브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해서 자발적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일이다.  

교육을 통한 인적 자원의 개선도 분명 경제 성장에 효과가 있지만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개별 노동자들의 일자리에 대한 기대치는 더 높아지게 되고 이 기대를 충족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개발 도상국에서 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나 IT 업체들처럼 특정 직업군이 다른 직업들에 비해 임금이나 혜택에 큰 차이가 나는 상황이 지속되면, 많은 젊은이들은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하는 등 오랜 시간을 들이는 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교육을 통해 형성된 양질의 노동력이 재화 생산에 사용되지 못하고 낭비되고 만다. 이는 노동 시장 전체의 기능을 악화시킨다.   


이렇듯 우리도 이미 거쳐 왔던 개발 도상국의 성장 모델을 완수한 이후의 다음 모델을 찾는 길은 그만큼 어렵다. 혁신 / 노동 / 정책 / 클러스터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성장은 그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대외적인 요인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때 일본은 좋은 노사 관계, 낮은 범죄율, 양질의 학교, 뛰어난 관료, 장기적인 전망 등을 통해 영속적인 고성장을 이룰 모델로 주목받았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가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 중국이 일본이 가는 길을 가고 있다. '성장은 결국 둔화될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오고 있는 것이다. 


1인당 GDP 수준이 중간 정도인 나라들이 현 수준에 정체되는 '중진국의 함정 (1960년 중위 소득국이던 101개국 중 2008년 고소득국이 된 나라는 13개뿐이다)'은 이 둔화 과정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높은 성장률 목표치에 매달리면 성장을 부양하기 위해 안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 1990년대의 일본이 그랬고 정부 주도의 중국 경제가 최근 우려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정부의 입김이 은행에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되면서 연줄이 없는 젊은 기업의 성장이 오히려 막히고 있다. 시장에 내버려 두어서도 안되지만 국가 주도의 정책은 항상 실패의 위험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런 정체를 벗어나는 길에 사실 왕도는 없다. 수세대에 걸쳐서 여러 경제학자들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의 근본 메커니즘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그러나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가난한 나라 부유한 나라 모두 자국 경제 내에서 명백한 낭비 요인들을 없애는 것이다. 모기장을 무상 공급해 말라리아를 없애고, 신생아 돌봄을 통해 유아 사망률을 낮추고, 사회 불평등 지수를 낮추고 더 나은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후생은 개선될 것이고, 개선된 삶은 건강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람도 어른이 되어 키가 크지 않으면 더 건강하기 위해 골고루 먹고 운동을 해서 체지방률을 낮추고 근육을 키워야 하듯이 한 나라의 경제도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경제 주체들의 체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디 즈음에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기업 친화적'인 정책이 필요한 상태일까? GDP 3만 불 시대를 열었다지만 그래서 우리는 그 이전보다 행복한가? GDP로는 잡히지 않는 진정한 성장의 길은 무엇일지 이어지는 책 후반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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