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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Sep 27. 2022

법없이도 잘사는 우린 법으로만 해결하는 지금이 불편하다

사람은 해 오던 일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35년 동안 교편을 잡으셨던 아버지는 어디를 가든 무언가를 손녀들에게 알려 주려 하셨다. 프로젝트 매니저 일을 오랫동안 해 왔던 나는 휴직 중이지만 아내와 매주 회의를 하고, 규칙과 시간표를 짜서 생활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 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도 하나의 직업이지만, 5년만 맡게 되는 임시직이다 보니 원래 하던 일의 틀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인권 변호사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내내 기득권에 도전했었고, 건설 회사를 운영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온 나라를 토목 공사로 뒤집어 놨었다. 하던 가닥을 놓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국무총리는 공식 발언이 아니지 않냐고 두둔했고,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 이었다면서 민주당 국회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조작 보도를 한 언론을 허위 보도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TPO상 방금 회의에서 바이든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나오는 자리에서 갑자기 한국 국회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설사 보도대로 미국 이야기였다고 해도 바이든 앞에서나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지나가면서 개인적으로 충분히 장관과 주고받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속어를 쓰지 않는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가 우리 대통령이면 더 좋았겠지만, 우리는 나라를 이끌 대통령을 뽑은 것이지 제일 인품이 좋은 성인군자를 뽑은 건 아니지 않은가. 바이든 대통령이 전해 듣는다면 조금 불편할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국익에 위협이 되는 일도 아닌 일종의 가벼운 해프닝일 수 있었다.



그런데, 15시간이 지난 후에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는 대통령실의 해명이 더 이상했다. 그러면서 악의적으로 조작 보도한 언론사를 고발하겠다는 발표를 들으니 더 어이가 없었다. 왜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고 모든 일을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할까?


문재인 대통령 사저 앞에서 보수단체들이 집회를 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도, 국민의 힘 내부에서 이준석 대표와 갈등이 붉어졌을 때도 반응은 한결같았다.  "일상적인 대화였을 뿐이다." "법대로 해결하면 될 것이다."


MBN 인터뷰

아마도 윤 대통령이 평생을 검사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법을 다루는 직업 중에 판사는 양쪽의 의견을 들어서 기준에 맞춰 판결해야 하니 일단 들어 봐야 한다. 변호하는 사람을 대변해야 하는 변호사는 일단 고객의 편에 서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검사는 오직 법을 기준으로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고 이를 입증하는 일을 수행한다. 


그래서 검사는 대상이 되는 피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분쟁과 시비를 가리는 기준은 오직 법이다. 더욱이 은퇴만 하면 변호사 개업해서 몇 배의 돈을 버는 기회가 열려 있음에도 고되고 힘든 검사 조직을 떠나지 않는 고위직 검사들에게는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교두보라는 투철한 사명감이 가득할 것이다. 그렇게 옳고 그름을 법에 맞추어 판단하고 추상같이 집행하여야 하는 검사의 권위는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할 것 같다. 가오 떨어지게 사과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쩌나.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서도 배우지만, 법은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데 필요한 "최소한"을 정해 놓은 것이고 집에서부터 학교, 기업, 사회 어디에서나 다툼과 분쟁은 그 "최소한"의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법으로 정리되지 않는 것들을 들어 보고 때론 강하게 주장하고 때론 달래고 때론 물러서면서 맞춰가는 작업을 우리는 政治라고 부른다. 


평생 검사였지만, 지금은 우리의 대통령이기에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런 정치를 원한다. 대한민국 국회는 '새끼'라고 불러도 괜찮은 것인가? 아마도 검사 시절에 수사하면서 지저분한 정치인들 모습 많이 봤을 것이고 그래서 정치인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정치하는 자리이고 여든 야든 국회는 협치해야 하는 파트너다. 


HSG 임원 교육 팜플렛 - 새 지위에는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


기업에서도 현업에 있던 선임이 임원이 되고 나면 새로운 자리에 맞춰 변화해야 살아남는다. 과연 남은 임기 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의 성공에서 벗어나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어려운 시절이라도 법 없이도 잘 사는 우리는 어쨌든 모든 일들을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지금이 조금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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