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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Feb 24. 2023

모두가 양반이 되고 싶어 하는 사회

나는 벽진 이 씨다. 이렇게 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물어본다. 어디라고? 통계에 따르면 오천만 인구 중에 10만 명이 조금 넘는다고 하니 희귀한 성씨인 건 분명하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조상이라고 하면 조선 말기 유학자인 이항로가 있다. 위정척사 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 최익현선생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에게 가문은 너무 중요한 존재다. 종갓집 제사에 참여하시고, 조상님들 자료를 찾아 모으신다. 할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셨던 이런저런 서책과 문서들을 박물관에 기증하고, 그 기록을 찾아 챙겨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시다. 작은 아버지는 현재 벽진 이 씨 씨족 모임 다음 카페지기도 맡고 계시기도 하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나의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선비셨다. 동네에 큰 어른으로 대소사 있으면 찾아가서 돌봐 주시고, 글도 대신 써주시고 그러셨단다. 사랑방에서 항상 한복을 입고, 어려운 한자 책을 살펴보시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대신에 집을 건사하고 사는 데 필요한 농사일은 할머니가 다 하셨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다섯 아이들을 키우고 부산으로 학교 보내고 공부시키는 뒷바라지는 온전히 할머니 몫이었다. 할머니는 그래서 억세고 생활력이 강하셨다. 집안 살림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할아버지를 원망하실 만도 한데, 두 분은 가끔 티격태격은 하셔도 서로를 존중하셨다. 할아버지는 양반이셨고, 할머니는 그걸 받아들이신 듯했다.





얼마 전 친한 서울대 의대 교수님 한 분이 페이스북에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셨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다른 나라들과 다른 배경에 대해서 국가 간 철학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논리가 흥미로왔다.


"인류 역사에서, 모두 왕과 귀족 노예의 계급 신분 사회에서 변화해 왔는데, 우리나라는 좀 독특하다. 프랑스혁명 같은 왕과 귀족을 죽이고 모두 평민이 되는 혁명이 우리는 없었다. 대신에 모두 가짜 족보를 만들어서 모두 양반 귀족이 되었다. "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LsP7zdDhcC2mP8eE9k7B3RJgR1gSUvDvUQ3VeEijLa3AjjizgAq8XqaVArxhqB1Fl&id=100000729795422&mibextid=qC1gEa


모두가 평민이 되는 것과 모두가 양반이 되는 것은 차이가 너무 크다. 모두가 평민이면 우리는 동등하고 각자의 개성이 중요하고 나는 굳이 사회 지도층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래서 일상적인 삶이 보장이 된다면 굳이 다른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야 할 필요를 덜 느낀다.


프랑스의 그랑제꼴이나 영국의 캠브리지 옥스퍼드처럼 명문대는 사립 고등학교 출신들이나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리그는 그 리그대로 또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같지는 않다. 일단,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나와는 관계없는 얘기다. 내가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의 교육을 받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대신 정치가 내 삶을 위협하면 언제든 행동할 수 있고, 대신 사회를 위해 뭘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적은 편이다.


그러나 모두가 양반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나는 고귀한 양반이다. 그래서 카페에서 누군가 노트북을 두고 가더라도 건드리지 않는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는데 거침이 없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민폐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의 고귀함은 그런 행동들로 증명된다.


이렇게 옳음을 실천하는 나를 무시하는 행동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보면 불쑥불쑥 화가 난다. 내가 내는 돈만큼은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겠고, 기대한 만큼보다 별로이거나 다른 사람이 더 좋은 대접을 받으면 무시당한 것 같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나의 고귀함을 지키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는 경쟁이고 나는 그 싸움에서 이겨서 나락에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배워야 하고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 지금 가장 잘 나가는 대학에 들어가야 나의 "양반"을 지킬 수 있다. 법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법대가 그랬고,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경영학이 그랬다.


IT가 기세를 부리던 시절에는 컴공과가 그러더니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는 믿을 건 전문직인 의사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전국 의대가 다 차야 다른 고가들이 채워진다. 그렇게 대부분의 입시생들이 소위 "잘 나가는 대학과 잘 나가는 학과"에만 몰리니 안 그래도 치열한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어디 성씨세요? 하고 물어보면 대한민국 오천만이 다 대답한다. 모두 다 양반 같다. 조선 시대 초기에 10%였던 양반이 말기에는 80%에 육박했다니 전란과 식민 통치를 지나오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 족보들의 진위는 사실 많이 의심스럽다. 아버지가 신주처럼 모시는 벽진 이 씨 족보도 사실 가짜일 수도 있다.  


족보가 사실이든 가짜이든 나는 상관없다. 평생 선비처럼 사셨던 할아버지와 생활력 강하셨던 할머니, 두 분의 피는 나한테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른 사람들을 도울 줄 알고,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우리 집안은 살아가는데 필요해서 하는 직업에 귀천은 없다. 


명절이면 늘 바쁜 떡 방앗간을 운영하던 작은 숙모님은 제사상 차리는 일에 늘 참석하지 못했지만 타박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늦게라도 바쁜 일 마치고 오시면 할머니는 늘 따로 상을 차려 주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동생도, 장사하는 동생도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귀하게 여겨 주셨다. 


나는 할머니의 그 마음이 진짜 고귀하다고 생각한다. 내 밑에 누군가가 있는 걸 확인해야만 인정받는 격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내가 귀하게 대접받으려면 나도 남을 귀하게 대하면 된다. 낮은 곳에 임하셔서 가장 귀하게 되셨던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되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면 된다. 


아직 사농공상의 계급의 개념이 남아있지만 시대는 바뀌고 있다. 유퀴즈에 나온 젊은 화학공학과 출신 타일공의 선택은 그런 변화를 말해 준다. 공부를 잘 하면 좋지만, 공부가 다가 아니고, 남들이 다 가는 길을 따라 가면, 거기에는 무한한 경쟁만 있는 레드오션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내게 맞는 일. 내가 잘 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 다른 사람에게 필요로 한 일들이 제대로 대접 받는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치열해져만 가는 교육 문제도, 심각해져만 가는 출산율 문제도 진짜 답은 여기 있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양반이 되길 원하는 사회지만 양반만으로는 함께 살아 갈 수 없다. 고고하게 살아 온 할아버지가 진짜 선비처럼 90여년을 살아 올 수 있게 믿고 지지해준 할머니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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