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보다 더 오래 같이 보내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어 - 4
다음 주에 일본으로 출장이 잡혔다. 아, 이 얼마 만에 해외 나들이인가. 물론 가서 할 일은 힘들겠지만 가슴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왕 나간 김에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월요일에 출발해서 금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일정이니까 주말 이틀에 월요일 월차 써서 3일 정도는 여행하고 그다음 주 월요일에 와야겠다.
오늘 출근하니 같이 가는 김 수석님으로부터 비행기표 같이 예매해 달라는 메일이 왔다. 총무팀에 연락을 해서 출발은 같이 하고, 돌아오는 일정은 따로 신청을 하고 출장 준비도 하고 짬짬이 여행 준비도 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부른다.
"나 연구원, 다음 주 출장 말이야, 총무팀에서 항공권 예매 때문에 결재 요청이 와서 보니까 돌아오는 일정이 김 수석하고 다르던데 무슨 다른 일정이 있는 건가?"
"아, 예. 업무는 금요일에 다 마치는데, 저는 일본에 개인적으로 좀 더 머물렀다가 월요일까지 여행하고 화요일에 복귀하려고 합니다."
"뭐. 아니 출장이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개인적인 일정을 붙여도 되나?"
"문제가 될 이유가 있을까요? 출장비도 금요일까지만 청구할 것이고, 금요일 이후 숙박비는 제가 개인적으로 부담할 거고, 항공료도 금요일 저녁 비행기보다 월요일 밤 비행기가 더 싸던데요. 업무에 지장 없도록 김수석 님 도와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도... 알았네. 대신 금요일에 출장 간 결과에 대한 1차 보고서는 보내 놓고 놀아. 사고 없도록 조심하고."
"네."
어이구. 되게 깐깐하네. 출장 보고서는 갔다 와서 써도 충분한데 뭘 꼭 금요일에 쓰라고 그러지? 해외에 혼자 나가니까 샘나서 그러나? 회사에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일 다 마쳤으면 좀 더 놀다 와도 되지 않아?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한 저는 해외 출장을 갈 기회가 많았습니다. 프랑스나 일본, 중국에 1,2 주 일정으로 자동차 시험 주행도 하러 가고, 기획 회의도 하러 갔었죠. 돌이켜 보면 출장은 늘 평소 사무실에서 하던 업무보다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메일도 주고받고 온라인 회의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는 시대에 굳이 예산을 들여 가며 출장을 보낸다는 건 그만큼 회사가 기대하는 바도 크다는 의미이겠죠.
그렇다고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업무 시간에는 열심히 일하고 남은 시간은 활용할 수 있지요. 현지 식당에 가서 나만을 위한 근사한 저녁식사를 한다거나, 주말이 껴 있으면 미술관이나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보기도 했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환경에서 보내는 작은 여유로움은 고된 출장을 견디는 힘이 됩니다.
요즘은 블레저(Bleisure)라는 용어가 있더군요. 비즈니스(Business)와 레저(Leisure)의 합성어로, 출장 중에 짬을 내어 쇼핑이나 관광 등 여가활동을 하거나 출장 전후로 개인의 휴가 일정을 덧붙여 여행을 즐기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입국 심사나 비자받기가 더 까다로 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입출국 제한이 완화되는 비즈니스 출장을 이용해서 개인의 해외여행의 욕구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볼일도 보고, 개인적인 여유도 즐기고 비행기표 값도 아끼면 다 좋아 보이지만, 출장은 일단은 일을 하러 간 자리입니다. 그러니 주객이 전도되면, 열심히 진행했던 성과도 다 묻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몇 가지만 조심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일은 피해 봅시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은 일정입니다. 장기간 파견이 아니라면 출장은 보통 언제 어디로 가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한다가 정해져 있습니다. 일단 개인적인 일정은 접어두고, 애초의 출장 목표를 중심으로 일정과 동선을 짜야합니다. 저녁 시간에 도시 구경을 하겠다고 방문해야 하는 출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숙소를 잡았다가 정작 약속 시간에 늦어 버리는 일이 생기면 안 되겠죠. 특히 동행자가 있는 경우에는 함께 하는 일정을 같이 일을 중심으로 계획한 후에 개별 활동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출장 비용 청구 시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숙박비, 일당, 교통비 등 출장을 다녀온 이후에 회사에 청구를 할 때는 출장 목적에 따라 공적으로 사용한 비용과 개인 여행을 위해 사적으로 사용한 비용을 철저히 구분해서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 추가 여행이 없이 담백하게 출장만 갔다고 시뮬레이션했을 때 발생할 비용 이외의 지출은 개인이 감당하는 것이 맞습니다. 같은 숙소에 머물더라도 결재받은 출장 일수에 맞추어서 회사에 제출할 증빙 서류는 꼭 따로 챙겨서 받아 두는 것이 불필요한 설명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성과겠죠. 회사가 예산을 들여서 출장을 보낸 목표를 달성했다면 분위기가 좋겠지만, 부족했다면 연이어 붙인 개인 일정이 괜한 가십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공식적인 일정 동안에는 진행 상황에 대해서 미리 간단하게라도 보고를 하고 조언을 요청하는 사전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하루 일정이 마치면 10분만 시간을 내서 간단한 주간 보고를 해 보세요.
매일 오늘 무슨 일을 했고,
각 이벤트마다 결과는 어땠고,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떤 걸림돌이 있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 계획이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이렇게 정리해서 보고해 두면 위치는 떨어져 있어도 함께 일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출장 온 사람만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 있는 팀장도 함께 하고 있는 거죠. 무엇보다도 공적인 일정을 충실히 보냈다는 증거도 되니 이후에 붙인 개인적인 일정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출장도 잘 마치고, 개인적인 즐거움도 누리는 스마트한 출장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정은 일단 일을 중심으로 계획하자.
출장 비용으로 처리하는 항목은 선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그날의 진행상황을 간단히라도 보고해서 책임을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