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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Nov 09. 2022

휴일에 등산 부르는 건 에바지.

가족보다 더 오래 같이 보내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어 - 3

Scene #13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포근한 이불속을 나가기가 너무 싫다. 주말이 시작되는 토요일 아침은 일주일에서 가장 기분이 좋아야 하는 시간이어야 하는데 오늘은 마음이 무겁다. 진짜 이 추위에 산에 가야 하는 거야?


시작은 목요일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를 조금 일찍 마치고 엄마가 친구 분들하고 단풍 여행 가셔서 찍은 사진을 보고 있는데 이 팀장이 보고 물어본다.


"나 연구원, 좋은 거 보나 봐."

"아, 오늘 어머니께서 친구분들하고 원주 치악산으로 단풍놀이 가셨거든요. 날씨가 좋아서 좋으셨나 봐요."

"그러게, 요즘 단풍철이지. 나도 예전에는 산에 좀 다니고 했었는데 요즘은 통 가본 적이 없네. 민지 씨는 산 타는 거 이런 거 안 좋아하지?"

"아니에요. 저 예전에 대학교 다닐 때 등산 동호회 해서 지리산도 가고 설악산도 가고 그랬어요."


곁에서 듣고 있던 김 수석님이 뜬금없이 끼어들었다.

"어? 그래. 그럼 이번 주 토요일에 가깝게 청계산 어때요? 아침에 청계산역에서 만나서 매봉까지 오르고 난 다음에 내려와서 점심으로 닭백숙 먹고 일찍 헤어지는 걸로. 이번 달 팀 회식은 술 대신에 이런 건전한 행사 한 번 해 보시죠."

"안 그래도 회사에서 밤에 늦게까지 회식하지 말라고 지침도 오고 했는데 좋은 생각이네. 민지 씨도 괜찮지? 등산 동호회 출신인데 잘 좀 부탁할게."

"네..."


산! 좋지? 근데 왜 그 좋은 산을 당신들하고 가야 하냐구. 이래서 직장 상사하고는 취미도 같이 하지 말라고 그러던데... 이렇게 날 좋은 주말까지 얼굴을 봐야 하는 건 완전 에바지 않나? 


회장님 영도 하에 다 같이 출발 - 한겨레 기사 사진 참조


단합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건 좋습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워크숍이라고 하는 행사를 가끔 접합니다. 물론 주제를 정해서 토론도 하고 결과를 산출해 내는 정말 세미나 같은 활동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워크숍은 일종의 회사에서 가는 소풍 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입사했을 때 저희 팀이 60명에 사무실 근무하는 사람들과 실험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반반 정도였습니다. 얼굴도 잘 모르는 분들도 많았었는데 청평에 어느 리조트에 가서 같이 팀 대항 체육대회도 하고 반에는 회식하면서 신고식도 하고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그다음 주에 출근길에 반갑게 맞아 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회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업무가 아닌 다른 활동들을 같이 하면 확실히 서로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행사들은 업무시간에 이루어집니다. 사원들 간의 친목 도모를 통해 얻는 이득이 일을 하는 것보다 크다고 판단하는 회사 입장에서 이런 활동들은 투자와 같습니다. 그리고 사원들 입장에서도 업무 시간에 정당한 보수를 받고 회사의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니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주말에 등산이라니요. 가족보다 더 오래 같이 지내지만 엄밀히 일로 만난 사이에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이벤트입니다. 사내 동호회 활동처럼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그 취지가 좋더라도 업무 시간 이외의 강압적인 활동은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싫은 것은 싫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시판을 보면 주말 등산에 대한 험담 들이 많이 보입니다. 직속 부하와의 친목으로 등산이나 낚시 등을 강권하는 경우도 있고, 회사 차원에서 행사를 추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근무일이 아닌 날에 행사를 진행하는 건 명백히 직원의 삶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행위입니다. 

블라인드 게시판 등산 검색어 결과


우리는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은 좋아하지만, 지나친 간섭과 오지랖은 불편해합니다. 이렇듯 모든 관계에는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사에서 다 같이 하는 공식적인 행사는 개인이 대응하기 어렵겠지만, 단지 상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개인적인 요청이라면 어떤 선을 그어야 그 관계가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본인이 맡은 업무가 비서같이 수행 및 의전을 챙겨야 하는 역할이 아니라면 참석하기 싫은 주말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말하는 순간에는 불편하고 참석하지 않으면 다른 불이익이 있을 것 같지만 그들도 알 거예요. 강요할 수 없고 또 강요해서도 안된다는 걸 말이죠.  


회사에서 계속 공식 행사를 주말에 연다면, 일단은 되도록 참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추후에 인사나 노조를 통해 직원도 공식적으로 이런 행사들이 불편함을 피드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적인 분쟁의 여지가 있고 사고의 위험에 대한 책임도 크기 때문에 최근에는 회사들이 더 조심하는 분위기입니다.  


무조건 싫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싫은 건 싫고 또 좋은 건 좋다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이 더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은 싫어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서로 맞추다 보면 문화도 바뀔 수 있습니다.  


TIPs for MZ

관계에는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참석하기 싫은 주말 행사에는 불참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회사 공식 행사에는 되도록 참석한다. 다만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피드백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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