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원 Apr 18. 2023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노무현과 오바마

매일 뉴스에 나오는 정파 싸움으로 가득 찬 정치판을 보면 환멸을 느껴진다. 그렇게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 싸움만 하는 사람들 손에 우리의 삶이 달려져 있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바로 곁에서 보고 있다.  


TV에 나오는 김상욱 박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How Democracies Die"는 여러 정치 후진국들과 미국의 사례를 들어가면서 민주주의 쇠락을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괴인이 나타나기 전부터도 미국의 민주주의도 우리와 비슷하게 이미 서로를 경멸하는 과정에 접어들고 있었다.  


책은 많은 정치 후진국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얼마나 허술한 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한다. 많은 나라에서 정당한 과정으로 선출된 대통령들이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기소하고, 세금을 물리고, 언론을 통해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고, 돈으로 회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판을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페루 후지모리 대통령. - 선거로 독재를 시작한 전형이다.

그렇게 기울어진 판에서 이루어지는 선거를 통해 입법기관까지 장악하고 나면, 헌법을 바꾸고 장기 독재가 가능한  발판을 만드는 일은 일사천리다. 법으로 보장된 절차를 통해서 헌법조차도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한 것이 민주주의이니까. 그만큼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다수결이라는 원칙에 의해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위험을 제어하려면, 트럼프 같이 독재자의 기질을 가진 선동가를 사전에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정치 선진국에서도 과거 이런 선동가들이 편 가르기로 인기를 얻는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정당의 주요 인사들이 마지막 버팀목이 되어 극단적인 성향의 후보들이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게 걸러주는 필터 역할을 해 왔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공격에도 수위를 늘 조절해 왔다. 남북 전쟁 이후 극명한 의견 대립이 어떤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배운 미국 정치인들은 정당이 달라고 의견이 달라도 서로를 존중해 주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들을 지켜왔다. 필리버스터로 다수당의 법안 처리를 막을 수 있음에도, 하원에서 통과한 법안이나,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받아들여 주었다. 다음번에 자신들이 정권을 가지게 되면 같은 양보를 기대하는 "신사협정" 같은 관용이 불완전한 제도를 보완해 주었던 셈이다.  


그러나, 1900년대 후반이 되면서 이런 관용은 점차 사라졌다. 클린턴은 임기 내내 정책을 수행할 예산을 승인받지 못했고, 이런저런 스캔들에 대한 수사를 받아 왔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엘 고어의 패배 인정 선언을 받고 통합의 정치를 약속했지만, 실제 정책은 유동층을 포기하더라도 지지자 집단에 집중해야 더 유리하다는 조언을 받아들여 극단적인 우측 행보를 이어 갔다. 911 테러는 그런 방향을 더 부채질했다. 그리고 감시견에서 애완견으로 전락한 미국 의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된 여러 권한 남용에도 형식적인 수사만 벌였다.  

멕케인은 결과를 승복했지만 공화당은 그러지 못했다.

이런 경향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 시대에 더 심해진다. 공화당 인사들은 본인들의 대통령이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했고, 편향된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실어 날랐다. 이제는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단순한 정치 성향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것이 되었고,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들과는 결혼도 안 된다는 혐오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분열과 갈등의 배경에는 종교와 인종이 숨어 있다. 1960년대 흑인에게 참정권을 주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면서 위기를 느낀 기존의 정기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백인 기독교 중산층은 공화당을 중심으로 더 뭉치게 된다. 그와 반대로 새롭게 투표에 참여하게 된 남부의 흑인들과 시민권 운동을 옹호한 북부의 많은 진보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이 민주당으로 몰려들었다. 지역적으로 남부는 공화당으로 북동부는 민주당이 된 것이다.  


이렇게 갈라선 두 집단은 서로를 적대시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보수 측 공화당 쪽이 극단주의 세력에 더 취약했는데 이는 지지 집단내의 다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인 백인 개신교 집단은 200년 가까이 미국 유권자의 대다수를 차지해 왔고 미국 내에서 우월한 위치를 누려 왔다.  


그러나 계속된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다수의 지위를 잃은 이들은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자신들이 자라나 '진정한' 미국이 사라져 가고 있다"라고 믿고 있다. 이런 상실감과 정체성이 위협을 받게 되면 상대에 대해 공격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라는 극단적인 인사가 대통령이 되면서 민주주의는 하나씩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미국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의 상황과 하나씩 연관이 되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있었던 비리 수사와 편향된 언론들. 상고 출신 대통령을 인정하지 못해 골프장에서 OB가 나도 노무현 탓이라고 하면서 탄핵을 승인하고 만세를 불렀던 세력들과 그 대안으로 뭉쳐서 당선되었던 박근혜까지.. 인종과 종교에 의해 갈린 미국과 같이, 세대와 지역에 따라 갈린 우리나라도 서로를 경멸하는 정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전쟁과 산업화 과정을 이겨온 세대도, 민주화 시대를 이끌어 온 세대도 각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나라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지금. 우리가 분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과정을 겪지 않고 새롭게 유입되는 세대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과연 이렇게 변화가 많고 다변화된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과연 적합한 통치 제도일까?


결국 시청률을 쫓아 더 자극적인 방송이 난무하듯이

다수의 의견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원칙에서 시작한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는 더 적대적이고 자극적인 선동을 하는 사람들이 득세하기 쉬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흔들리지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은 결국은 투표장의 표를 통할 수밖에 없겠지만. 과연 우리 스스로는 서로를 경멸하는 시선을 거두고 상대를 존중하는 관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도 일종의 신화라는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빈곤 극복을 위해, 함께 존엄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