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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ug 01. 2023

'힘든 준비'가 '잘한 결과'보다 좋았다.

오랜만에 서는 그라운드에서 그 시절 펑고가 그리워졌다.

남해에 왔다. 숙소로 잡은 곳은 스포츠파크호텔. 프로운동선수들의 전지훈련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호텔 주변으로 잘 정비된 운동 시설들로 둘러 싸여 있다.

이곳에는 야구장도 있다. 남해스포츠파크 야구장. 텅 빈 더그아웃이었지만 오랜만에 그라운드에 서니 마음이 설렜다. 타격한 거처럼 1루로 전력 질주도 해보고, 2루 도루도 하고 3루 터치하고 홈까지 내달려 봤다. 새벽이어도 벌써 덥다.

마운드에 올라서서 투구도 해 본다. 이렇게 가까웠던가? 지금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회사에 들어가고 첫 회식에 같이 실험하던 형님의 운동 좋아해 한 마디에 시작했던 사회인 야구. 십여 년을 하면서 감독도 하고 우승도 하고 많은 추억들이 있다.

그런데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장면은 따로 있다. 내 에러로 이기던 경기를 역전당해서 지고 난 다음 주말에 회사 운동장에 모여서 연습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형들이 날 3루에 세워 두고 정말 머릿속이 하얗게 될 때까지 펑고를 받고 또 받았다. 옆에서 계속 칭찬해 주면서...  


나에게 다가오고 내가 던지는 공 하나에 팀 전체의 승패가 걸려 있는 그 무게감. 책임은 사람을 키우지만 부담은 사람을 움츠리게 하기 마련이다. 큰 책임을 등에 지고도 부담 없으려면 즐겨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을 들여서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그 '준비'가 나는 '결과'보다 좋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희열. 우리 큰 딸이 좋아하는 최강야구에서 나온 김성근 감독님의 펑고 장면을 보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나이가 들고 전보다 나에게 더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지만 대신에 실패가 두렵고 도전이 망설여지는 요즘, 오랜만에 서는 그라운드에서 누가 펑고 한번 한 시간 진하게 쳐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따라 주질 않겠지맘 뭐 어떤가? 나랑 공 그리고 응원해 주는 동료면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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