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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ul 14. 2023

신발 정리 해야지 하시던 잔소리가 듣고 싶다.

장모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세월엔 장사 없다고 정정하시던 모습을 처음 뵈었던 24년 전보다 많이 여위어지셨다. 작년 여름에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에 지난한 재활 과정을 계속해 오시다가 얼마 전에 집 근처 요양원에 자리가 나서 옮기게 되었다. 다른 분들과 휠체어 타고 하루 종일 거기서 지내신다.  


집으로 모시고 돌봐 드리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이상과 현실의 차이 앞에서 마음을 거두게 된다. 이제는 혼자서 거동 자체가 불편하신 상황이라 24시간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서로가 힘들고 불편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자주 찾아뵙고 한 번씩 집으로 모시거나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가겠지만 죄송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내가 늦둥이로 태어난 덕에 어머님은 우리 또래 부모님 세대보다 나이가 더 많으시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직접 겪고 그 혼란스러웠던 한국 근대사를 헤쳐 오면서도 네 자식들을 다들 훌륭히 키워 내셨다. 세대 차이가 나서 잔소리가 많으셨고 그래서 늘 딸이랑 옥신각신하셨지만 자식들과 손녀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은 늘 한결같으셨다.


옥수동에서 근처에 사실 때 제일 자주 들었던 잔소리가 현관 신발 정리였다. 낮 동안 돌봐 주던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 식사하고 우리 집에 들르실 때면 꼭, "이상인, 이정원. 현관에 신발이 이게 뭐야. 신발 정리가 잘 되어 있어야 복이 들어온다고 했어 안 했어." 하시면서 아픈 허리에도 숙여서 정리해 주시곤 하셨다.  


그때는 "또 그 잔소리." 하면서 "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이렇게 건성으로 답하곤 했었는데 그 뒤로 떨어져 살게 되면서 현관을 오갈 때마다 그때 그 어머님 목소리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하루를 시작하는 출발도, 힘든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서 처음 보는 집의 모습이 현관 앞 신발 정리라는 걸.

  

하루를 시작할 때 깨끗이 정리되어 있고 나갈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을 보면 하루가 잘 풀릴 것 같다. 그리고 지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서 잘 정돈된 신발을 보면 여기가 아늑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내 집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마음으로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신발 정리를 해 오셨다. 신발뿐 이랴. 아내가. 우리 가족이 이만큼 살아가는 데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애써주신 어머님 덕분이다.  


그 마음이 생각나서 우리 집 현관은 생각날 때마다 내가 정리한다. 할 때마다 어머님 생각이 난다. 재활 병원에서도 간병인들과 친해지셔서 나오는 길을 눈물바다로 만드신 마성의 매력을 가진 우리 "어머님". 새로운 요양원에서도 좋은 인연들과 행복하게 지내시길 기도해 본다. 그러실 자격이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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