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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an 24. 2021

부부라는 여행을 우리답게 하고 있습니다.

2016년 9월 6일 결혼 십주년을 앞둔 생일에 함께 가는 동반에게

사랑하는 상인씨 생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결혼 십주년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제 저는 태어나서 부산보다 서울에 더 오래 산 사람이 되었고, 당신과 알고 지낸 시간들이 부모님과 함께 산 시간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그런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우리가 서로를 지겨워 하지 않고 동반자로 생각하는 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속도가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흔히들 삶을 여행에 비유하곤 하지만, 사실 여행만큼 사람의 품성이 드러나는 활동도 없습니다. 저마다 보고 싶은 것 / 하고 싶은 것 / 먹고 싶은 것 / 경험해 보고 픈 것이 다 다르기 마련이니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에선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매 순간 순간이 사실 위기입니다. 먼저 저 만치 달려가 버리고 왜 늦게 오냐고 보채는 사람과 함께라면 절경도 그냥 고행의 배경일 뿐이고 그렇다고 2인3각처럼 발 묶고 무조건 같은 속도로 가야 한다면 그건 사실 고문에 가깝습니다.


같이 가는 듯 서로 다르고 서로 다른 듯 또 함께 가는. 먼저 갔다고 늦게 오는 사람을 보채지 않고. 좋은 것이 있으면 기다렸다 같이 볼 줄 아는. 너무 많은 것을 보려 하기 보다는 우리에 집중하고 천천히 한발 한발 내딛는 발의 느낌과 맞잡은 손의 따스함을 느끼며 이야기 듣고 또 이야기하는. 지난 여름 더위를 피하고 사람들을 피해서 여유있게 누렸던 남도 여행처럼 우리는 같이 긴 "부부"라는 여행을 우리답게 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선 꼭 필요한 것만 잘 챙긴 단촐한 짐꾸리기와 여유 있는 일정이 중요한 만큼 일상 속에서 늘,

꼭 해야 하는 무언가를 늘 잊지 않아 주어서 고맙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를 늘 깨우쳐 주어서 고맙고

꼭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서 고맙고

꼭 필요한 그 때 늘 곁에 있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생일은 기쁘면서도 나이들어감을 느끼게 되는 아쉬운 날입니다. 바빴던 삼십대를 이제 보내고 다가오는 사십대에 우리가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사실 아무도 모르지만 여전히 함께 가고 있을 거란 것과 함께 맞춘 시간의 익숙함으로 더 천천히 그렇지만 꾸준히 뚜벅뚜벅 "우리의 길"을 함께 갈 것을 믿습니다. 지난 십년이 그랬듯이 앞으로도 더 최선을 다해 보아요.


생일 축하합니다.

선선해지려하는 가을에 사랑하는 남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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