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비중이 늘어날수록 한 대 당 보조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23년 들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요동치는 여파가 여전하다. 그 뒷배경에는 나라마다 다른 보조금 제도가 존재한다. 아직은 내연기관차에 비해서 비쌀 수밖에 없는 전기차를 조금이라도 더 보급하려는 각국 정부들의 필요에 의해 도입된 보조금 제도는 그동안 전기차 시장을 지탱해 왔다. 그러나 전기차의 비율이 일정 비율을 넘어서고 재정적 한계에 직면하게 되면서 지역별로 시기별로 보조금 지원이 축소 혹은 폐지되었고 이에 따라서 시장의 반응과 각 제작사들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022년에 이미 전기차 공급 비율이 25%를 넘어선 중국은 2023년부터는 중앙정부 보조금을 폐지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10% 넘게 가격이 상승한 것과 마찬가지여서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위축되었다. 그리고 테슬라를 비롯한 제작사들은 이미 보조금이 포함된 가격에 익숙한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저가형 모델을 시장에 내어 놓았다. 원가 저감을 위해 LFP 배터리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런 현상은 유럽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작년 12월부터 재원을 모두 소진했다는 이유로 보조금을 폐지한 독일에서는 전기차 판매가 얼어붙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VW, Audi, Mercedes-Benz, Stellantis, Tesla 등은 독일 정부가 EV 보조금 프로그램을 종료함에 따라 EV 구매자에게 별도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업 이익을 손해 보더라도 판매량을 유지하면서 원가 저감을 할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로 파악된다.
전기차 보조금이라는 정책 자체가 계속 존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중국의 선례를 보듯이 신차의 25% 이상이 전기차로 채워지면, 재정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늘어난다. 실제 우리나라도 보조금 제도를 도입한 이후로 매년 50% 이상 관련 예산을 증액하여 2022년 이미 1조 9천억 원이 넘는 예산이 책정되었지만, 실제 전기차 한 대를 구매할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2027년 1900만 원에서 1100만 원으로 떨어졌다. 특히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서울이나 세종시 같은 곳에서는 지자체 보조금은 200만 원 밖에 되지 않았다. N이 늘수록 N분의 1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전기차 업체의 살아남는 길은 보조금이라는 안락한 지지대가 사라진 이후에 대비해 연착륙을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3년 중국의 전기차 시장 트렌드를 보면 보조금이 사라진 직후인 연초에는 모든 전기차들의 판매가 주춤했으나, 저가 차량을 위주로 판매량을 점점 회복하더니, 보조금 가격대에 익숙해진 소비 심리로 하반기에는 예전의 트렌드를 거의 회복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성비가 좋은 브랜드에 대한 쏠림 현상도 더 심해졌다.
이런 중국의 모습은 제작사들에게 전기차의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 준다. 배터리 에너지 밀도의 상승으로 2025년이면 Total Cost of Ownership이라 부르는 총 보유비용이 역전될 것이라는 IEA 국제 에너지기구의 예상은 미-중 무역 갈등과 De-coupling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전고체 배터리 같은 차세대 배터리 혁신 없이는 당분간은 성능과 가성비 사이에서의 줄다리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국내 배터리회사들이 LFP 배터리 개발에 뒤따라 참여하게 된 것은 바람직한 방향 전환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는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비례해서 보조금 예산을 한없이 늘릴 수는 없다. 정부의 보조금은 국가가 추구하는 정책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조건 설정이 필요하다. 환경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전기차 보급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싼 전기차도 중요하지만, 충전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야 하고, 제한된 인프라 상황에서는 되도록 한번 충전하면 주행 거리가 길어서 다시 충전이 필요할 때까지의 간격이 길수록 유리하다. 에너지 밀도가 높은 배터리와 전비가 높은 차량, 그리고 메이커에서 직접 충전 인프라를 많이 설치할수록 더 많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설정한 배경에는 전기차 보급에 따른 불편함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고뇌가 담겨 있다.
보조금을 지원하는 차량의 가격대 별로 보조금 지원에 차등을 주는 제도도 제작사들에게 가격 하락에 대한 압박을 준다. 2023년 기준으로 5700만 원 이하 차량에게만 100%를 주고, 8500만 원까지 50%, 그 이상은 미지원을 하는 것으로 차등을 주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전기차 모델들의 엔트리 가격이 조정되었다. 올해는 이 기준을 5500만 원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보조금을 되도록이면 국내 기업 위주로 배분하고자 하는 의지도 읽힌다. 에너지 밀도를 내세워 LFP 배터리는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혜택을 축소하게 되면 차종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차이가 나면서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 미국의 우려국가 제외 정책처럼 대놓고 특정 국가에 불이익을 소외하는 것은 무역 분쟁이 될 가능서도 크다. 이에 대외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이해 당사자자들 간의 합의를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2023년에도 전기차 보조금 제도가 공시된 것은 2월 말이었다. 매년 말부터 한국자동차협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방향을 정하지만, 예산이 확정되는 연말부터 합의된 보조금 제도를 확정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잘 못 정하면 금세 예산을 소진해서 연말까지 보조금이 없어 시장이 얼어붙고, 너무 타이트하게 설정하면 시장 전체가 위축되고 특혜 시비가 생길 수도 있다. 매년 전기차 시장이 보조금이 소진된 시점부터 재확정되는 기간까지 동면 기간을 거치는 상황을 피하려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된 로드맵을 세우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영원할 수 없는 보조금의 생리를 감안하면 변곡점이 생기고 있는 이 시점에 어떤 정책이 세워지는지에 따라서 국내 미래 전기차 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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