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만들려고 해도 반도체가 부족해서 못 만드는 시대가 온다.
GPU로 유명한 엔비디아의 주가는 2023년에 200% 이상 급등하면서 시가총액은 1조 7천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이제 엔비디아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치를 지닌 미국 상장 기업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단 4개 기업뿐이다. AI 모델을 구동하는데 필요한 GPU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업 가치가 급증하고 있는 중이다.
차가 스스로 주행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인식하고 앞으로 갈 경로와 동작을 판단하고 그대로 구현되도록 제어하는 인식-판단-제어의 3 단계를 거친다. 그중 가장 쉬운 단계는 제어다.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많은 공장에서 사람대신 정해진 일을 수행하는 로봇들이 개발되었다. 차도 ADAS 기능을 통해 조건을 정해 주면 그대로 움직이는 제어는 이미 구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전 단계인 인식과 판단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주변을 보고, 인식하고 판단하지만 그 과정 속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쌓아 온 수많은 경험들이 녹아 있다. 형체를 보고 차 인지, 사람인지 구별하는 것을 넘어서서 택배 트럭이면 갑자기 멈출 수도 있고,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오토바이는 차가 정체로 멈춰 있어도 그 틈을 빠르게 지나갈 수도 있고, 횡단보도 앞에서 공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그 경험이 제대로 쌓여서 정리되어야 다음 행동에 대한 판단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이런 학습 과정은 다양한 자료들을 빠른 시간에 간단히 분류해서 시뮬레이션하고 보상을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전체 에이전트가 하는 작업은 복잡한 일이지만, 학습 과정은 복잡하다기보다 동시에 처리할 일이 많은 상황이다. 그런 병렬 계산에 적합한 프로세서가 그래픽 프로세서로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개발된 GPU이다.
흔히들 반도체라고 하면 많이 알려진 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CPU는 입출력장치, 기억장치, 연산장치 같은 리소스를 이용하는 중앙처리장치를 말한다. 알고리즘에 따라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멀티태스킹을 위해 나눈 작업들에 우선순위를 지정하고 전환하며 전체를 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비해 그래픽을 처리하기 위해 개발된 GPU는 모니터 화면의 각 픽셀로 이루어진 영상을 처리하는 용도로 개발되었다. 그래서 CPU에 비해 반복적이고 비슷한 대량의 연산을 병렬적으로 나누어 작업하는데 특화되어 있다. CPU가 대형 트럭이라면 GPU는 손수레가 한 부대 있는 셈이다. 시스템 안에서 CPU와 GPU는 서로 보완하면서 작동한다. CPU가 인간의 좌뇌처럼 사고와 논리적인 판단을 한다면, GPU는 우뇌처럼 감각을 통한 경험을 처리해서 CPU가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이다.
CHAT GPT도 학습한 데이터가 더 많은 4.0 버전이 훨씬 더 강력하듯이 결국 자율 주행 인공지능의 성능도 얼마나 많은 데이터로 경험을 쌓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개발 과정에서의 개개의 자동차 시험 데이터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데이터의 축적을 위해서는 고객이 주행하는 과정에서 측정되는 모든 데이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모든 차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를 서버에 공유해야 하고 이렇게 모인 수많은 데이터들을 분석하는 엄청난 양의 연산장치들을 필요로 한다.
이렇듯 미래의 자율주행,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산업에 대한 경쟁력은 연결하고 모으고 분석하는 역량에 달려 있다. 그 중심에는 GPU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최근 중국이 주요 반도체 생산국인 대만에 대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산업의 보호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앞으로 급증하게 될 반도체 수요에 대해 우방국으로부터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런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특히 상대적으로 메모리 쪽으로 치중된 국내 반도체 업계도 미래를 위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할 시점이 도래했음을 인식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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