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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Jun 07. 2024

누가 덜 나쁜가를 따지고 있는 우리 정치 현실이 슬프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읽고..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참 모순적이다. 뉴스를 통해 전해 듣는 정치는 여의도와 용산에서 일어나는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만 사실 늘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인지 결정하기 어려운 우리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사람이 덜 실패할 것이라고 기대와 함께 투표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만약 국가가 회사라면 아마도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회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을 뽑을 때 어떤 능력이 가장 중요하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고 답하겠다. 큰 일을 하는 데는 다양한 역할이 필요하니 각자의 역할에 기질이 맞는 사람을 찾고 발탁하고 믿고 맡기는 일을 잘하는 사람. 조직을 잘 이해하고 필요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할 줄 아닌 사람이 수장으로 있으면 조직은 알아서 잘 굴러가기 마련이다. 


정부라는 가장 복잡하고 여러 이익들이 얽혀 있는 조직도 내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행정의 생리를 잘 알고 충돌을 조율하고 어디가 가장 시급히 개선할 부분인지를 알고 있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그런 리더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인권 변호 시, 건설사 대표, 독재자의 딸, 검찰 총장 출신. 우리의 선택이 늘 최선과 거리가 있었던 이유는 투표라는 제도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제일 경험 많고 유능한 사람을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누가 더 덜 나쁜가만 열심히 따지고 있는 셈이다. 



프랜시스라는 영국 여당의 원내 총무가 정적들을 하나씩 스캔들로 쫓아내는 과정을 담은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이런 민주주의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는 현직 총리부터 자신이 경쟁 상대가 될 사람들의 약점을 찾고 언론과 하수인들을 이용해서 뒤에서 끊임없이 물어뜯는다.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일들도 관점에 따라서는 엄청난 부정이 되고, 개인적인 비밀들이 공개되면서 몰려오는 수치심은 웬만한 뻔뻔함으로는 버티기가 쉽지 않다. 여론은 언론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그 언론의 방향조차 조회 수와 광고 수입 등 자본과 힘의 논리에 흔들린다. 


결국 모두를 제거하고, 어려운 중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신사의 모습으로 총리 자리에 오르면서 소설은 막이 내린다. 이 소설은 BBC에서 3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었다가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아 케빈 스페이시가 나오는 미드의 대표작이 되었다. 미국 특유의 대통령 선거 제도와 맞물려서 미드에서는 음모가 더 치밀하고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정치판이 저런 곳이라면 '까마귀 나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던 시조처럼 더럽고 추악한 곳과는 발도 담그기 싫어진다. 요즘처럼 정치에 좌 우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는 더하다. 작은 추문도 상대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고 SNS에서 확대 재생산되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개인의 기호는 갈대와 같아서 여론에 흔들린다. 사람은 좋은 선택에 대한 기대보다 실패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실패를 피하려면 잘못을 덜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한 것도 이해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에서 우리는 국가의 주인이지만, 다수의 선택에 의존하는 한 최선이 아니라 차악에 힘이 실리고 지금도 많은 '프랜시스'들이 남들의 허물을 들추어내어서 더 나락으로 보내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최악은 아닌 존재'임을 증명하는데 만족하고 있다. 


문제는 덜 나쁜 사람을 뽑는데 만족하기에는 정치가 우리 삶에서 풀어야 할 당면한 숙제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김정숙 여사가 타지마할 가는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선물로 받았는데 대가성이 있었는지 나는 사실 관심이 없다. 그건 그들만의 카드일 뿐이다. 언제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다루는 여러 카드를 두고 협의하는 정치를 두게 될까? 과연 대의 민주주의라는 지금의 제도 하에서 이런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는 내내 찝찝했던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추악함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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