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준 님의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읽고
얼마 전 회사를 퇴사했다. 초등학교 이후로 늘 어딘가에 속해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꼭 나가야 하는 어딘가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참 자유롭지만 가끔 불안하고 문득 외롭다. 남들은 다 달리고 있는데 나만 멈춰 선 게 아닌가 싶고, 그래서 느린 속도로 걷는 사람이 나 혼자인가 싶어 외로워 지곤 한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혼자가 아니다.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살아가기로 한 아내가 곁에 있다. 우리는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가족들을 돌보는 일을 함께 나누고, 함께 운동하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고 있다. 다행히 속도도 취향도 잘 맞아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보려고 한다.
주변에 비슷하게 사는 사람이 없어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었는데, 도서관에서 문득 눈에 띄는 제목이 들어왔다. 그렇게 만난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는 평생 독신으로 살 줄 알았던 20년 이상 경력의 카피라이터 편성준 씨가 출판 기획자이자 노는 것에 대한 생각이 비슷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사는 이야기다. 그들은 그동안 남들이 원하는 것들을 하고 살아왔다며, 나처럼 퇴사하고 이제라도 스스로 원하는 것들을 하며 살아 보고 있다.
글을 통해 슬쩍 훔쳐보는 그들 부부의 삶은 우리와 참 많이 닮았다. 여행 가면 어디를 돌아다녀도 좋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 보고 쉬는 걸 더 좋아한다. 선뜻 내린 어려운 결정들을 지지해 주고, 실수를 해도 추한 모습을 보여도 서로 받아 준다.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같은 점보다 다른 점들이 많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퇴사를 결정하기 전에 망설이던 시절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참 제대로 살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해진 틀이 강한 것 같다. 학생 때는 공부를 해야 하고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취직을 해야 하고 성공해서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공부시키고 노후를 준비하고... 마치 게임에서 사냥을 계속해서 레벨업을 해야 미션을 통과할 수 있는 것처럼 전형적인 모범 답안 같은 삶이 있고 그 레일에서 벗어나면 큰일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존재한다. 결혼을 망설이고 아이를 낳기를 주저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제대로 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과 다르지만 잘 살고 있는 이 부부의 이야기를 보면서, 부부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다 똑같을 필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얼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 다르듯이 부부라고 꼭 남들이 하는 대로 살 필요는 없다. 그들도 겁이 나고 돈도 절실히 필요하지만 그래도 읽고 쓰고 놀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만들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우리도 우리 부부의 방식대로 살아봐도 괜찮겠구나 하는 용기가 났다. 그래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면, 겁내지 말고 하고픈 일이나 실컷 하고 살아 보련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보면서 내가 이들 부부의 삶을 보면서 느꼈던 것처럼 "아. 저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고 위로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