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배터리 산업에서 쌓은 노하우로 가성비 전기차 시대를 열었다.
2018년 테슬라가 모델 3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시작되었다. 열광 팬을 보유한 테슬라는 전 세계 각지에 기가 팩토리를 건립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 자리를 지켜 왔다. 그러나 영원한 승자는 없다. 캐즘과 새로운 모델 부족으로 테슬라가 정체되어 있는 사이 테슬라를 추월하고 전 세계 전기차 1위 기업의 자리를 차지한 회사가 있다. 바로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회사 BYD(Beyond Your Dreams)다.
지금은 자동차 회사로 더 알려져 있지만 BYD의 시작은 1995년 배터리 생산업체부터였다. 중국에서는 자체적으로 리튬 이온 전지를 개발한 BYD는 도시락 모양의 캔에 젤리롤을 넣고 수작업으로 조립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각형 전지가 주력이었다. 이런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한 전지는 Nokia에 납품하면서 시장의 인정을 받고 2003년에는 휴대폰 배터리 업계에서 글로벌 2위까지 성장했다. 이러한 시작은 BYD가 전기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탄탄한 기술적 기반이 된다.
단순 배터리 회사였던 BYD가 자동차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것은 2003년부터다. 시안 친촨자동차를 인수하면서 BYD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이듬해에는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회사도 설립하면서 전장 분야도 진출했다. 2005년 출시한 내연기관차 F3가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자동차 회사로서의 입지를 확보하게 된다. 2007년에는 휴대폰 부품을 분리 상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리고 워런 버핏으로부터 2억 달러가 넘는 투자를 받으면서 미래를 주도하는 회사로 주목을 받게 된다.
본격적으로 배터리를 활용한 자동차는 2009년에 선보였다. 기존의 F3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F3 DM은 가솔린 엔진과 모터기반의 하이브리드에 충전 기능을 더한 세계 최초의 양산형 PHEV 차량이었다. 2010년에는 F3 모델이 중국 전체 차량 중에 판매 1위를 차지하면서 52만 대를 파는 등의 성과를 보인다. 이런 성장세를 바탕으로 2011년 최초의 순수 전기차 SUV E6를 시작으로 13년부터는 중국의 왕조 이름을 딴 진, 당, 송 전기차를 차례로 출시하면서 전기차 회사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런 BYD의 급성장의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있었다. 2012년부터 20년까지 진행된 신에너지차 산업발전 계획에 따라서 BYD는 중국 정부의 중점 지원 대상으로 선전된다. 중앙 정부에서 사용하는 공용 차량으로 우선 구매하기도 하고, BYD 전기차를 구매하는 택시 회사나 버스 회를 대상으로 저리로 대출해 주는 제도도 운영했다. 특히 R&D 보조금을 주고, 세금을 환급해 주는 등 직간접적인 지원 금액은 1조 원에 달한다. 거기에 2015년부터 자국 배터리 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글로벌 업체들을 전기차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화이트리스트 제도가 시행되면서 정부의 비호 아래 중국 내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게 된다.
그러나 초창기 BYD 전기차는 부족한 점도 많았다. 특히 충돌 사고가 나면 화재가 발생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면서 안전한 배터리를 만드는데 지속적으로 투자하게 된다. 더 저렴하고 화학적으로도 안전한 LFP 배터리의 경쟁력을 미리 알아보면서 ESS를 시작으로 전기 버스와 트럭 등 LFP 배터리를 이용한 상품의 포트폴리오를 늘려 나간다.
거기에 2018년에 본격적으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플랫폼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자체의 품질도 한 등급 더 끌어올렸다. 전기차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전기모터, ECU, 변속기등을 통합한 파워트레인 통합모듈과 DC-DC 변환기, 충전기, 전력분배장치 전력장치 통합모듈로 구성된 e플랫폼은 차체 중량과 체적을 기존 대비 25% 이상 줄이면서도 출력을 20% 이상 개선하는 성능을 보였다. 21년에야 E-GMP를 공개한 현대차보다 3년 이상 앞선 행보였다.
BYD가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생산 대수를 증가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였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40% 이상의 가격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공급망 문제를 최소화하고 비용 절감을 이룰 수 있었다.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한 BYD는 타사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신제품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특히 각형 배터리의 형태를 얇고 길게 설계하고 이를 모듈 없이 빽빽하게 배치하는 Cell to Pack 기술은 BYD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 배터리 셀에서 바로 팩을 구성함으로써, 배터리 팩의 높이도 낮추고 같은 부피에 들어갈 수 있는 배터리 용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이런 구조를 통해 BYD는 주력으로 생산하는 LFP 배터리의 낮은 에너지 밀도라는 약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NCM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는 20% 정도 떨어지지만, 가격은 30~40% 저렴한 LFP 배터리를 촘촘하게 더 많이 넣으면 저렴한 가격으로 NCM 배터리와 비슷한 주행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발열양이 적어서 화재의 위험도 낮기에 가능한 설계다.
그렇다고 BYD가 전기차만 잘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는 전기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 땅이 넓고 충전 인프라도 부족한 중국에서 순수 전기차는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많다. 그런 시장의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BYD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에서 배터리 용량을 줄이고 소형 엔진을 배터리 충전용으로 사용하는 EREV (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 모델을 본격적으로 출시했다. 2024년에 공개한 4세대 PHEV SEAL- DMi는 배터리와 연료로 갈 수 있는 거리가 2000km에 달한다. 이런 압도적인 차들로 2024년에만 전기차와 PHEV를 합쳐 430만 대를 판매하면서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 중에 4위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대부분의 판매가 중국 내수 시장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은 BYD의 약점이다. 특히 전기차와 배터리 관련해서 무역 장벽이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BYD는 해외 진출이 더 절실해졌다. 2010년대 후반부터 진입장벽이 낮은 전기차 버스를 앞세우면서 유럽 시장에 진출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슬라나 다른 전통적인 회사들이 경쟁하는 고급 전기차 시장보다 가성비가 중요한 남미, 중동, 동남아, 러시아 같은 신흥 자동차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2025년부터는 한국 시장에도 진출해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이제는 중국산 자동차라고 폄하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전기차가 세상에 드러나기 전부터 배터리를 다뤄왔던 BYD는 오랜 경험과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가 되었다. 특히 저렴한 LFP 배터리를 자체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을 기반으로 가성비 높은 전기차와 PHEV로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 전기차 시대를 시작한 것이 테슬라라면, 전기차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회사는 분명 BYD다. 최근에는 DEEPSEEK와 협업하면서 자율 주행 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전기차 시대 그 이후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는 BYD의 미래는 우리에게는 위협이자 기회다. 잘하는 것을 살려 가치를 확장해 나가는 그들의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