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중국 회사들의 기세를 이겨내야 한다.
기존의 자동차의 핵심이 엔진이라면 전기차의 중심은 단연 배터리다. 전기차를 만드는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는 전기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기준이 된다. 전기차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사실 전기차용 배터리를 제대로 만들어 내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CATL, BYD 등 중국의 배터리 회사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1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이 바로 LG 에너지 솔루션이다.
LG 에너지 솔루션의 역사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다. 당시 LG그룹은 미래 핵심 산업으로 리튬이온 전지 기술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지해서 LG화학에 1992년부터 전지 개발 부서를 조직했다. 당시 배터리 기술이 앞서 가던 일본 소니로부터 기술을 도입하면서 원통형 전지 개발에 집중하면서 1999년 청주 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전지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초창기 전지 개발은 전기차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전자 기기용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본격적으로 전기차 용도의 개발은 2000년대에 접어 들어서다. 전자 기기와는 달리 전기차는 최대한 많은 양을 제한된 부피에 넣어야 충분한 주행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데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니켈-코발트-망간을 양극재로 활용하는 NCM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게 된다. 거기에 제조 단가와 수율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원통형 전지를 대신해서 캔과 부품이 적어 유연한 구조를 가진 파우치형 전지를 주력으로 선택하게 된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2007년에는 아반떼 하이브리드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미국 GM Volt의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면서 시장을 선도했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크게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대처하기 위해 LG화학은 현지 공장을 늘리며 확장해 나간다. 2011년 충북 오창에 전기차 전용 배터리 공장을 세우고, 2012년에 미국 미시간에 공장을 설립하며 첫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뒤이어 15년 중국 난징과 18년에는 유럽 폴란드까지 진출하면서 주요 자동차 시장을 공략할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다.
자동차 회사와의 협력도 이어져서 인도네시아에는 현대차와 조인트 벤처를 설립했고, 미국에서는 GM, 혼다 등과도 합작으로 배터리 공장을 지으면서 규모를 늘려 오면서 200 GWh 이상의 배터리 생산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성장에 필요한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LG 화학에서 배터리 사업을 독립시켜 LG 에너지 솔루션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분사 후 맞은 2021년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전례 없는 급성장을 기록했다. 이 시기, 전 세계 완성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신차를 잇달아 발표했고, 배터리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LG는 이미 미국과 유럽, 중국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확보하며 글로벌 생산 능력을 크게 늘리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 점유율도 크게 키울 수 있었다. GM, 포드, 벤츠,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연이어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2022년 이후부터는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기세가 급상승하며 위기가 찾아온다. 저가 시장에만 머물러 있던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급속히 끌어올리면서 와인딩 타입의 각형 배터리 기술에서 선진국들을 추월하게 되었다. 특히, CATL과 BYD는 배터리 라인업을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안전성, 에너지 밀도에서도 글로벌 경쟁사들을 앞서기 시작했다. 전기차 보급 비율이 10%를 넘어서면서 찾아온 캐즘으로 중국 외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는 크게 위축되었다.
기술적으로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다양한 구조로 조합이 가능하다는 NCM 파우치형 배터리에 집중했던 것도 약점이 되었다. 량 바닥에 배터리를 배치하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일반화되면서 배터리가 들어가는 공간이 규격화되자 굳이 모듈이 필요한 파우치형 배터리는 수요가 줄어들었다. 오히려 셀에서 바로 배터리팩을 구성하는 Cell to Pack 기술로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셀을 넣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에너지 밀도가 떨어지는 LFP 배터리의 약점이 사라졌다.
이러다 보니, LG의 시장 점유율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특히 유럽과 중국 시장에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2024년 기준으로 여전히 3위를 지키고 있지만 10% 대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호황기였던 2020년대 초반에 진행했던 해외 공장 설립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공장은 지었는데 배터리의 수요는 떨어지니 공장 가동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2022년 73.6% 였던 가동률은 2025년 들어 57.4% 까지 떨어지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해결책은 결국 다시 기술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NCM의 장점을 살려 전기차에만 의존하지 않고 산업용 배터리, 로봇용 배터리, 소형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늦었지만 LFP를 활용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과 직접 경쟁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파워와 효율을 높은 NCA 배터리를 안전하게 운영하는 기술력으로 고성능 차량 시장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배터리 형태도 기존의 파우치형 일변도에서 Cell to Pack 기술에 더 적합한 원통형 배터리를 추가하면서 다양성을 늘렸다. 특히 2025년에는 기존보다 반지름을 46mm로 키운 4680 원통형 배터리를 오창 공장에서 양산하여 테슬라에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기술력과 안정성을 인정받고 있다. 신형 모델 Y에 적용되는 LG의 4680 배터리는 중국 전기차 회사인 CHERY의 글로벌 버전에도 적용되기로 결정했다. 표준화된 사이즈로 다양한 차종에 혼합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원통형 배터리 양산은 LGES의 매출 증가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거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 취임으로 높아진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도 LG에게는 호재다.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중국 회사들의 진출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면서 북미 시장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미리 투자한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산 배터리는 전 세계 물량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각종 규제로 북미에서는 제한되다 보니 한국산 배터리의 비중이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배터리 없이는 전기차도 존재할 수 없다. 에너지를 담는 그릇인 배터리는 늘 더 높은 성능과 안전성 그리고 가격 경쟁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간다. 전기차 초창기에 더 많은 주행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성능에 집중하면서 시장을 주도했던 LG 에너지 솔루션은 변화하는 전기차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점점 그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를 보유한 나라가 손에 꼽을 만큼 배터리 시장에서 쌓은 오랜 경험은 분명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라도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영역으로 분야를 확장해 가는 전략이 성공한다면 다가올 미래에도 LG 에너지 솔루션을 전기차 시장의 중요한 플레이어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