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잘 만든 플랫폼으로 선전하고 있는 우리 기업 - 현대차

내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길 기원한다.

by 이정원

우리는 멀리 있는 다른 나라들의 기업들의 성과는 우러러보면서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 기업에 대해서는 박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 잘 보이고 익숙하고 이런저런 소식들도 자주 접하다 보니 신비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인 현대차 그룹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자동차 시장에서 앞서가고 있는 대단한 기업이다.


완성차 판매 순위.jpg 쟁쟁한 회사들을 넘어서 700만 대 이상을 파는 세계 3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3년 신차 판매 대수만 보아도 현대차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찾아온 글로벌 경기 침체 상황에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대차는 차분히 순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일본의 도요타가 1000만대로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폭스바겐에 이어 730만 대를 판매하면서 3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시장을 삼등분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는 실패했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실적이다.


이런 현대차의 선전의 배경에는 다른 회사들보다 빠르게 체질 개선에 나선 전략이 있다. 테슬라가 모델 3을 공개하면서 전기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겠다고 발표한 2010년대 후반부터 현대차는 전동화에 승부수를 걸었다. 시기상조라는 당시의 우려를 뚫고 제대로 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승부수를 던져서 나온 결과물이 2021년 아이오닉 5에 적용된 E-GMP다.


E_GMP.png 2021년 발표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E-GMP (Electric Global Modular Platform)는 배터리, 모터 및 전력 전기 시스템을 포함한 차량의 새시로 구성되어 있다. 동일한 구조에서 휠베이스를 확장 가능하기 때문에 소형 SUV인 EV3부터 대형인 EV9까지 다양한 유형의 차량을 구성할 수 있도록 표준 모듈화 되어 있다. 빠른 충전을 위해 800V까지 급속 충전이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배터리를 보호하기 위한 강화 구조로 안정성도 높였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을 시작한 폭스바겐은 MEB (Modularer E-Antriebs Baukasten)라는 플랫폼을 준비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내연기관 차를 만들던 기존 연구 인력들이 개발을 주도했지만,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개발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개발 일정이 계속 지연되고 플랫폼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에 버그가 계속 나오는 문제점을 보였다. 최종 결과물로 나온 전기차들은 테슬라나 현대차 대비 주행거리도 부족하고 초급속 충전도 되지 않은 약점은 폭스바겐의 발목을 잡는다.


hyundai-ioniq-lineup-campaign-social.jpg 같은 플랫폼에서 다양한 차종을 출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폭스바겐의 실패 사례와 비교해 보면, 현대차의 E-GMP는 시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전기차 판매량으로는 전 세계 7위권이며, LFP 배터리를 앞세워 전기차 대중화가 진행 중인 중국 회사들을 제외하면 테슬라와 BMW에 이어서 3위까지 성장했다. 캐스퍼 같은 소형차량에서, 준중형 세단, SUV, EV9 같은 대형 MPV 등 시장에 맞추어 공략할 다양한 라인업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도 존재한다. 파우치 타입 배터리에 편중된 배터리 구조는 모듈 없이 셀에서 바로 팩을 만드는 Cell to Pack 기술을 적용해 체적 효율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 SK ON 등 국내 배터리 회사에 편중된 배터리 공급망도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약점이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회복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jpg 기존 대비 모터의 비중을 높여 효율을 끌어올린 차세대 하이브리드 플랫폼

거기에 배터리 가격이 생각만큼 떨어지지 않고 캐즘이라 불리면서 전기차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정체기를 맞으며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한 때 2030년까지 제네시스 라인업을 모두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발표 했지만 이제는 중간 징검다리로 경쟁력 있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 2020년대 초반에 크게 축소했던 엔진 개발 부서를 다시금 재정비해서 성능과 효율이 좋은 하이브리드 엔진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디젤이 차지하고 있던 조금 비싸지만 연비 좋고 힘이 센 모델들의 구동 장치들이 하이브리드로 세대교체 중이다. 요즘은 신차를 구입하면 카니발 디젤은 바로 받아도 하이브리드 모델은 1년은 기다려야 한다. 소비자들도 그만큼 친환경 차에 대한 관심이 늘고, 전동화가 주는 편리함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HEV1.jpg
HEV2.jpg
디젤이 차지하던 위치를 하이브리드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런 소비자들의 요구에 빠르게 반응하는 것도 현대차의 장점이다. 전기차 플랫폼 개발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준전기차인 하이브리드 차량에서도 전기차에서 누리는 편의 사항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모터로 바퀴 별로 출력을 제어해서 자세를 제어하거나, 구동용 배터리를 이용해서 차에서 220 V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V2L 기능들은 자동차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의 범위를 크게 넓혀 주고 있다.


이렇게 경쟁력 있는 전기차 모델을 개발하고 소비자 성향에 맞추어 개선해 나간 덕분에 현대차는 202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테슬라가 15%가 넘는 영업 이익률에서 중국 자동차 회사들에 밀리면서 6% 대로 수익성이 악화되는 기간에도 현대차는 10%에 달하는 이익률을 보이며 다음 혁신을 위한 투자를 할 여력을 확보하고 있다.


EPIT1.jpg 800V 초급속 충전이 가능하게 한 E-PIT. 400km 주행할 거리는 15분 내로 충전이 가능하다.


이런 자본력은 앞으로 전기차 시장에서 현재의 위치를 지키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중국 전기차 회사들은 14억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좋은 전기차들을 시장에 계속 내놓고 있고, 테슬라를 비롯한 기존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다음 시대로 넘어가 자율 주행 기능이 강화된 로보 택시 등을 선보이면 새로운 시장에 도전 중이다.


이런 경쟁자들의 추세를 따라가기 위해 현대차도 전기차의 성능 개선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배터리 컨디셔닝을 강화하고, 차의 열관리를 개선하는 등 전기차의 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800V 초급속 충전망인 E-PIT 같은 인프라 구축에도 나섰다. 기존 전기차 플랫폼도 실내 공간을 더 극대화한 형태로 변형해서 승용차뿐 아니라 상용차와 PBV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도 곧 출시될 예정이다.



EGMPS_1.jpg
EGMPS_3.jpg
EGMPS_4.jpg
EGMPS_2.jpg
기존 E-GMP를 이용해 PBV에 활용 가능하도록 하는 E-GMP.S


전기차 그다음을 위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2025년 CES 중에는 GPU 회사인 NVIDIA와 인공지능을 이용한 새로운 기술 개발에 나셨다. 자율 주행 기술을 검증하고, 생산 프로세스를 개선하는데 NVIDIA의 AI Agen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42dot, Boston Dynamics를 인수하고 Waymo 같은 회사들과 협업하면서 전자기기처럼 변화하고 있는 자동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확보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국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다. 현대차는 빠른 결정과 과감한 투자로 선전하고 있지만 시장은 변하고 경쟁자들은 늘 새롭게 등장한다. 트럼프 2기 관세 전쟁 속에서 제조업의 현지화 바람을 타고 현대차도 인도, 미국 등 시장을 찾아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내수 70% 점유율에 안주해서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칭호가 더 어울리는 기업이 될 수 없다. 앞으로도 국내 1등 기업다운 새롭고 큰 도전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연 테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