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A 2025 리포트는 내내 지금은 중국 전기차 시대라 이야기한다.
https://www.iea.org/reports/global-ev-outlook-2025
2025년에도 국제에너지기구 IEA에서 발간하는 글로벌 전기차 보고서가 나왔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 그중에서도 전기차 동향을 보여주는 이 보고서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전기차 보급 현황과 그 배경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작년 보고서에서는 18-22년 사이의 전기차 지역별 가격 변화 차이에 대한 기술이 주를 이루었다면, 올해는 최근 2년간 그 격차가 얼마나 더 벌어졌는지를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
2024년에도 전기차 시장은 급 성장했다. 예전에는 전기차만 다루던 그래프는 좀 더 세분화되어 지역별로 PHEV 비중도 상세히 다룬다. 전체 1700만 대를 상회하는 실적 중에 60%에 달하는 1100만 대 이상이 중국에서 판매되었다. 특히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PHEV의 성장세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지역들이 경기 침체와 캐즘으로 성장세가 거의 보이지 않는 반면, 중국만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그들의 만의 시장을 키워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성장의 배경에는 당연히 경제적인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LFP 배터리 기술 발달로 60$/kWh 수준의 가성비가 가능해지면서 중국의 전기차 가격은 더욱 낮아졌다. 이미 2022년에도 내연기관보다 저렴했던 소형차 시장은 대부분의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싸졌고 중형/대형/SUV에서도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가격이 역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시장 자체에 저렴한 전기차 모델이 넘쳐 나는 상황이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면 중국의 전기차 가격 경쟁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지역들도 저가형 배터리 적용 등을 통해 약 5% 남짓한 가격 하락을 이루었지만 중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경우 전기차 개발 노하우를 적용해 20% 이상으로 가격을 낮추며 진입 장벽을 낮춘 중국과 오히려 15% 이상 가격이 상승한 다른 지역 간에 시장 점유율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높아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가격 경쟁력 덕분에 중국 자동차 시장의 구조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소형차의 경우에는 저렴한 전기차가 90% 이상의 점유율을 보이지만 차체가 커지면 커질수록 전기차의 비중만큼이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전기차의 성능은 즐기면서도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는 상황에서도 대안도 쉽게 찾으려 하는 합리적인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차 값만 싼 것이 아니다. 중국은 전기차 충전 비용도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하다. 개인 주택이 많아서 전기차를 주로 집에서 충전하는 경우에는 심야 전기 등을 활용해서 다른 지역도 내연기관차 대비해서 더 저렴한 유지비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공로에서 급속 충전의 경우에는 지대, 투자비 등이 포함되다 보니 충전 비용이 내연기관보다 오히려 더 비싸진다. 그러나, 중국은 급속 충전도 가정용 충전과 비슷한 수준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보이고 있다. 급속 충전 인프라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토지를 무상 대여하는 등의 여러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량 구매 비용, 세금, 유지 관리비, 유류(충전) 비를 모두 합친 총 소유 비용(TCO : Total Cost of Ownership)을 중대형 상용차 레벨에서 비교해 보면, 중국의 순수 전기차의 TCO는 미국/ 유럽의 절반 수준이다. 같은 중국 내에서도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도 20%/ 연료 전지차에 비해서는 절반 수준으로 저렴하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내연기관차는 유지비가 늘어나는 반면, 전기차는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중국 소비자들은 전기차 혹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렇게 차원이 다른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한 중국은 14억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전기차 대량 생산 태세에 돌입했다. 생산된 전기차는 중국 국민들뿐 아니라 전 세계로 빠르게 전파됐다. 전 세계 1700만 대 전기차 중 2/3가 중국에서 생산이 되면서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이었던 유럽과 미국 모두 중국 전기차를 견제하기 위한 압박을 시작했다. 징벌적 관세를 매기고, 중국산 배터리가 포함된 차량에 보조금을 제한하는 등 강도를 높였지만, 경쟁력 있는 차종의 침투를 막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압박의 당사자인 중국은 미국과 유럽에 의존하던 수출 시장의 다변화로 해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동남아, 중동, 남미 같은 제3지대 국가들도 전기차로의 전환 요구는 존재하지만 너무 비싼 차 값은 부담스럽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으로부터 공급되는 저렴한 전기차는 대기 오염은 줄이고 석유 의존도도 낮추는데도 긍정적이다. 무역 분쟁으로 판로가 막힌 중국 자동차 회사들의 적극적인 진출이 이어지면서 제3 국가들의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들의 비중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 나라가 이렇게 한 기술을 독점적으로 앞서 가는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의 지원으로 유지되는 사업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다른 나라의 기술 수준도 멀지 않은 미래에 대체재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현실은 압도적인 중국의 기세에 유럽도 미국도 문을 걸어 잠그기에 급급하다. 기후 위기의 대안으로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탄소 중립의 대의는 사라지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전기차 지원을 줄이는 조치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오히려 전 세계 탄소 중립의 속도는 더 늦어지는 듯하다.
이런 자동차 시장의 변화는 우리에게는 위기이자 기회다. BYD를 위시한 중국 전기차의 국내 진출 소식이 연이어 들리고 있지만 배터리도 전기차도 다른 미국과 유럽 회사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규제에 막힌 중국 회사들의 빈자리를 노려봄 직하다.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직접 대결을 어려워도 기술력을 공유하고 우회 수출 창구로 중국 기업들의 진출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자체 기술력의 수준을 높인다면 새롭게 재편되는 자동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배울 건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173 페이지의 보고서는 내내 지금은 중국 전기차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동향 플랫폼 아우토바인에 기고한 글을 조금 늦게 공유합니다. 최근 들어 중국 자동차 산업이 위기 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인 기술력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조 조정의 압박으로 혁신에 더 격렬하게 달려들 경쟁자들에 대한 대비가 절실한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