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권리인가? 품질의 지표인가?
뉴스를 보다 보면 자주 몇 만대 리콜 이런 문구가 뜹니다. 국산차나 외제차를 가리지 않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코나 전기차의 배터리 화재에 대한 리콜이 진행된다고 한동안 떠들썩 했습니다. 자동차 기술은 발달하고 품질은 더 좋아졌다고 하는데 체감상 리콜은 더 많아진 느낌입니다. 왜 그럴까요?
리콜은 회사 측이 제품의 결함을 발견하여 보상해 주는 소비자 보호 제도입니다. 현재 법규상으로는 문제가 발생하면 제작사는 정부에 신고하고 신문 방송 등을 통해 공표하고 직접 우편으로 대상 차량을 소지한 소비자에게 통보하고 관련한 모든 서비스는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작업을 진행하는데 드는 비용이 일단 만만치 않습니다. 1만대 리콜이라고 하면 대당 안내장 보내고 문제되는 부품을 수리하고 회사의 잘못으로 고객의 시간을 낭비하게 한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정비 서비스도 동시에 제공하니 적어도 부품 수리에 대한 공임을 제외하더라도 인건비 포함해서 최소 10만원 이상의 예산이 소모됩니다. 1만대면 10억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거죠.
거기에 리콜이라고 하면 여전히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서 신차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 회사에서는 안전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되도록 리콜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회사의 입장과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세계 어떤 나라들보다도 엄격한 부품 결함에 대한 모니터링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소비자기본법 49조에 따라 소비자의 생명 신체 및 재산상 안전에 현저한 위해를 끼치거나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강제 리콜을 권고 혹은 명령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이 권한은 정부에 위임받은 국가 연구기관이 수행합니다. 더 나아가 소비자 뿐 아니라 대기환경 보전법 50조에 따라 자동차 배기가스에 영향을 줄수 있는 부품들을 미리 정해 놓고 분기별로 고장으로 자체 서비스 네트워크를 방문한 모든 차량을 기준으로 같은 연도에 판매된 같은 차종의 같은 부품에 대한 결함 시정 요구 건수가 40건 혹은 2% 이상이 되면 무조건 결함 발생 원인등을 파악해서 부품 결함 신고를 해야 하고, 50건 혹은 4% 이상이면 리콜을 해야 한다고 동일한 부품에 대해서 강제 리콜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두번째 대기 환경 보전법의 기준이 굉장히 엄격합니다. 요즘 자동차들은 모두 전자 제어라 전자 부품들이 엔진 및 배기 가스 제어에 연관되는 경우가 많은데 4~5년 지나서 센서가 노후되어서 신호에 조금 노이즈가 가끔 들어오면 주행과 배기가스 제어에는 문제 없지만 정기 점검시 접촉 등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안내하는 메시지를 보내곤 합니다. 그런데 1년에 팔린 차량이 5만대 중 0.1%인 50건만 나와도, 현 제도하에서는 같은 LOT가 적용된 차량 전체를 리콜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안전과 관련된 필수 항목만 권장되었었는데 이런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항목도 미리 예방 차원에서 조치하도록 하다 보니 예전에 비해 리콜 안내를 받는 경우가 더 많이 늘어났을 겁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자동차 리콜센터 사이트 (https://www.car.go.kr/home/main.do) 를 방문해 보면 올 한해 9월까지 진행된 리콜 대상 차량만 150만대가 넘습니다. BMW가 17만대, 벤츠가 11만대, 현대차가 84만대네요. 언론에 많이 언급되는 큰 경우들 말고도 초기 차량 상태에서 개선하는 작업들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차들이 서비스 센터를 들르고 있으니 일반 정비 신청하면 대기 시간이 긴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대기도 길지만, 차를 사서 잘 타고 있는데 따로 귀한 시간을 내서 리콜을 받는 일은 소비자에게나 자동차 회사에게나 번거로운 일이죠. 특히 최근에는 많은 리콜이 SW업데이트만 받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는 서비스센터에 와서 지정된 장비로 업데이트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리콜 작업이 지정 사업소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자동차도 아이폰처럼 SW 업데이트를 집에서 받을 수 있다면 서로의 번거로움을 많이 개선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테슬라가 OTA (Over The Air) SW update라고 선도하고 있고 다른 제작사들도 속속 Connected 기능이 포함된 새로운 모델들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리콜 200만대 시대. 소비자 입장에서는 안전한 주행을 위해서라도 번거롭겠지만 영업점 방문하셔서 서비스를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물건을 산 소비자로서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니까요. 예전에는 리콜이라면 감추기 급급했고, 지금은 오히려 리콜을 잘 수행하는 회사가 더 투명하게 관리되는 회사로 여겨져 제작사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소한 업데이트도 사업소에 예약해서 받아야 하는 과정은 사실 소비자에게나 제작사에게나 모두가 번거로운 일이긴 합니다. 점점 더 엄격해 지는 규제 속에서 이런 불필요한 수고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작사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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