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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하다 Feb 02. 2022

내 인생을 초라하게 만든 건, 결국

퇴사준비록 024

 새해가 되면 다들 멋진 계획을 세우며 한 해를 시작하던데, 나는 동굴에 들어가기 바빴다. 이건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잘 지내다가 꼭 한 번씩, 수면 아래로, 꼬르륵, 깊숙하게 들어가 버린다. 내 세상에 가라앉는다. 브런치를 꽁꽁 숨겨둔 것도, 누구에게도 털어두지 못해 까맣게 타버린 마음을 어디에라도 털어두고 싶어서였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고, 이제 너 정도 나이면 이걸 하고, 곧 저걸 하고, 나중에 그걸 한다는 말에 휩쓸린 거라고 핑계를 두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결과지만, 그 선택이 모두 내 의지는 아니었다고. 그러니 현재의 내 모습은, 어린 시절 간절히 그려온 어른은 아닌 것 같다.


내 인생 별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꽤 괜찮은 순간들이 항상 있었어.
내 인생을 초라하게 만든 건
나 하나였나 봐.

그해 우리는 16화 (31:19)

 드라마 <그해 우리는> 연수의 대사를 듣고 문득, e님이 내게 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마 그때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본 누군가의 모습이 멋지다고, 마냥 부러워했다. e님은, 누군가 나를 보고 그렇게 느낄 거라고 말했다. 여전히 부족하다고 아쉬움에 발버둥 치는 내 삶의 단편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꽤 괜찮아 보일 수도 있겠구나. 스스로 ‘동굴’이라고 칭하는 잠수, 정비, 동면 비슷한 시기가 유독 길었다. 1월 2일을 시작으로, 23일.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지냈다. 썩 건강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가고 싶어졌다. 조금 더 ‘잘’ 살아가고 싶어졌다. 언젠가는, 일기장에 적어둔 웅이의 대사를 말하고 싶다.


나는 이제야 내가 뭘 해야 할지가 보여.
내가 뭘 하고 싶었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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