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pus Script : 토아빈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망향로 1094-22

by 그리울너머

천안 토아빈

이름만으로 안부를 전하는 그런 도시가 있다. 언젠가 한번, 천안에 있을 때 문득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천안은 대한민국 허리쯤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덕에 예로부터 수많은 발걸음이 교차하는 만남의 땅이었다.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도, 봇짐을 진 장사꾼도, 정처 없는 유랑객도 모두 ‘천안 삼거리’에서 잠시 고단한 짐을 내려놓곤 했다. 수 갈래의 길이 얽히는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잠시 숨을 고르는 쉼터였다.


시간이 흘러 풍경은 변했어도 그 본질은 여전하다. 지금도, 물류센터가 밀집되어 있고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나갈 그런 도시다.


복잡한 서울에 살다가 가끔 지방에 내려갈 일에 천안을 거쳐서 지나가거나, 한 번쯤 그 커피 맛이 그리울 때 토아빈을 방문하곤 했다. 천안 나들목을 빠져나와 입장에 위치한 조용한 동네 시골길 외길을 아주 조금 지나쳐 가면, 카페의 자갈들이 반겨 준다.

카페 외관을 둘러보면, 심심치 않게 카페 외부를 정돈을 한다거나, 이쁜 꽃들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공간에 쉬어갈 수 있게 해 주시는 사장님의 진심 담긴 배려와 관심이다. 가을이면 붉게 물든 핑크뮬리가, 다른 계절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넓게 드리워진 정원과 작은 연못을 채운다. 꼭 가을이 아니더라도,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꽃이 피어있고 커피 향과 함께 싱그러움을 더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코끝을 묵직하게 감싸는 로스팅 향기다. 갓 볶은 원두가 뿜어내는 고소하고도 쌉싸름한 그 공기는 토아빈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내가 가끔 서울에 살면서도 일 년에 두어 번 드라이브 겸 해서라도 토아빈을 방문하는 이유는 이러한 진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무엇이든 내 앞까지 배달되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세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매끈한 편리함보다는, 누군가의 땀이 밴 투박한 ‘행위’들에서 더 깊은 진심을 느낀다. 가령 지방의 5일장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흙 묻은 채소를 정성스레 다듬어 좌판에 올리는 상인의 거친 손, 가족을 먹이기 위해 꼼꼼히 장을 보는 어머니들의 분주한 발걸음. 나는 이 치열하고 소란스러운 과정들이 우리가 음식을 미각으로 느끼는 순간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맛을 즐긴다는 건, 눈앞의 결과물 뒤에 숨은 누군가의 시간을 읽어내는 일이 아닐까. 만드는 이의 그 진심을 알게 된다면, 우리 혀끝에 닿는 그 맛은 또 얼마나 더 각별해질까.

가게 한편, 벽면을 채운 화려한 수상 이력과 사장님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곳의 커피가 지나온 치열한 시간의 증명이다.


토아빈에서 처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날을 기억한다. 짙은 원두 향은 목 넘김 후에도 한참이나 입안을 맴돌았다. 덜 익은 원두의 떫은맛도, 지나치게 볶아낸 탄 맛도 없었다. 신선한 생두를 골라 가장 알맞은 순간까지 로스팅했을 때만 느껴지는 고소함. 그 긴 여운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곳의 원두가 특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장님은 좋은 콩을 찾기 위해 직접 바다를 건너 산지로 향한다. 낯선 땅에서 원두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그 손을 거쳐 가져온 귀한 재료를 정성스레 볶아낸다. 그렇기에 어떤 원두가 좋은지 묻는다면, 그날에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아마도, 오늘의 커피라는 메뉴가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특히 좀 더 특별한, 직접 내려주시는 핸드드립 커피는 보다 진한 느낌을 준다. 곱게 갈린 원두 사이로 천천히 내려오는 커피가 그 향을 듬뿍 담은 게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이 공간은 좀처럼 멈추는 법이 없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은 늘 열려 있다. 마치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는 유명한 명언처럼, 카페가 늘 그 자리에 있기에 우리는 언제든 위로받을 수 있다. 언제나 손님들에게 커피가 내는 소리와 향을 온전히 전하고 싶다는 사장님의 깊은 철학 덕분이다.


물가가 오르면서 저가형 대용량 커피가 일상이 된 요즘이다. 가끔은 맹물처럼 밍밍한 그 맛에 타협하며 그저 카페인을 채우기도 한다. 하지만 커피라는 음료가 가진 ‘진짜’ 향기와 깊이가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라면, 천안을 지날 때 부디 이곳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곳엔 커피에 진심인 한 사람의 시간이 묵직하게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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