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연암율금로 399-7
천안한우사랑과 용궁가든
천안의 북쪽 관문인 성환은 단순히 지나치는 변두리가 아니다. 이곳은 조선 시대부터 한양과 삼남 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 '성환찰방'이 자리했던 역로의 심장이었다. 수많은 길손이 여장을 풀고 쉬어가던 이곳은 한때 천안 시내보다 더 붐비고 활기가 넘쳤던 곳으로, 지금도 그 시절의 영화와 북적임이 골목마다 짙게 배어 있다.
성환의 들녘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객을 반기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배나무 숲이다. 봄이면 하얀 배꽃이 눈 내리듯 흩날려 '이화에 월백하고'라는 시조를 절로 떠올리게 하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기를 품은 황금빛 결실이 주렁주렁 매달려 과수원길을 수놓는다. 하지만 성환의 진정한 매력은 눈보다 코끝에서 먼저 완성된다. 읍내 깊숙이 들어서면 투박 하지만 정겨운 삶의 냄새, 구수한 국밥 내음이 진동하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부터 형성되어 장날이면 더욱 활기를 띠는 '성환 이화시장'의 순대타운은 성환의 자부심이다. 3대째 가마솥 불을 꺼뜨리지 않고 묵묵히 맛을 지켜온 순대국밥집들은 서민들의 허기진 속을 달래주던 위로 그 자체였다. 여기에 또 하나의 역사가 있으니, 1960년부터 화상의 손맛을 이어온 중국집 '동순원'이다. 반백 년 넘게 자리를 지킨 낡은 간판 아래서 맛보는 한 그릇에는 세월만이 빚어낼 수 있는 깊은 내공이 담겨 있다. 이처럼 성환은 단순히 오래된 동네가 아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 깊어진 맛과, 떠나는 이의 발길마저 붙잡던 옛 역원의 넉넉한 인심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맛과 기억의 성지다.
턱시도 입은 장인의 뜰, 그곳에 핀 300년의 맛과 정
성환 읍내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한적한 외곽 길을 따라가다 보면, 주민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전해지는 ‘한우사랑 용궁가든’을 마주하게 된다. 가게에 들어서면, 투박한 차림새 대신, 나비넥타이를 매고 정중하게 턱시도를 차려입은 사장님이 환한 미소로 객을 맞이한다. 마치 오페라 무대의 지휘자처럼 보이는 복장은 요리에 임하는 숭고한 마음가짐의 표현이다.
이 집의 식탁 위에는 성환이라는 땅이 지닌 역사적 깊이가 고스란히 올라온다. 조선 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300년 전 전통 한우 숙성법’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현대의 속성 숙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랜 기다림과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이 비법은 고기의 잡내를 없애고 본연의 감칠맛을 최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사장님의 고집은 주방을 넘어 펜 끝으로도 이어진다. 사장님은 연구한 한우의 세계를 집대성하여 <조선조 궁중음식 한우고기 이야기>로 신인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에게 요리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역사와 철학을 그릇에 담아내는 문학적 행위인 셈이다.
하지만 이 엄격한 장인의 공간에도 숨길 수 없는 따스한 온기가 있다. 가게 안을 찬찬히 둘러보면 벽면 곳곳에 삐뚤삐뚤 그려진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흔한 취객들의 낙서가 아니다. 손주들이 고사리손으로 남긴 순수한 흔적들이다. 턱시도를 입은 냉철한 장인도 손주들 앞에서는 무장 해제되는 할아버지임을 보여주는 이 낙서들은, 어느 유명한 화가의 그림보다 더 진한 정겨움으로 손님들의 마음을 먼저 어루만진다.
이곳의 백미이자, 예약 없이는 맛볼 수 없는 메뉴는 단연 ‘육회 냉면’이다. 숙성 고기의 양이 한정적인 탓에 하루에 판매할 수 있는 그릇 수가 정해져 있다. 쫄깃한 면발 위에, 300년 비법으로 숙성되어 풍미를 내는 육회가 넉넉히 올라간다. 부드러운 육회와 시원한 육수의 조화는 가히 충격적이다. 턱시도의 품격, 300년 역사의 깊이, 그리고 손주들의 낙서가 주는 따뜻함까지. ‘한우사랑 용궁가든’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사장님의 진심 어린 인생을 맛보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