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길 101
안성 풍물기행
천안의 끝자락, 입장을 지나 안성의 경계로 넘어가 복잡한 도심을 뒤로하고 서운산 방면으로 핸들을 돌리면, 차창 밖으로 시원한 청룡저수지가 맞이한다. 저수지를 끼고 달리는 짧은 길목은 계절마다 다양한 모습을 선물한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황홀경을 선사하고, 그 곁엔 식객 허영만 화백의 ‘백반기행’에 소개되어 미식가들의 발길을 잡는 징거미새우튀김 가게가 고소한 냄새로 유혹한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서운산이 이 일대를 감싸고 있다. ‘상서로운 구름이 머무는 산’이라는 이름처럼, 서운산은 해발 547미터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유순하고 둥글둥글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복해야 하는 산이 아니라, 누구나 가벼운 걸음으로도 그 깊은 숲 내음을 맡을 수 있는 친근한 산이다.
그 산자락에 안기듯 자리한 천년고찰 청룡사는 이 고즈넉한 풍경의 방점이다. 고려 시대에 창건된 이 절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조선 후기 떠돌이 예인 집단인 ‘남사당패’의 근거지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줄을 타고 춤을 추며 민중에게 웃음을 주던 바우덕이와 예인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서린 곳. 대웅전의 기둥을 보면 반듯하게 깎지 않고 구불구불한 자연 나무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썼는데, 이는 마치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던 예인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닮아 투박하면서도 멋스럽다.
다시 서운산을 내려와 저수지를 바라본다. 청룡저수지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물이 가득 차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바닥을 드러내며 비워지기도 한다. 인위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그 자연스러운 호흡. 꽉 채우지 않아도, 혹은 비어 있어도 그 자체로 그림이 되는 저수지의 풍경은 도시의 소란에 지친 여행자에게 고즈넉하고도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풍경을 따라 걷다 만난 미식 기행
서운산이 품어낸 고즈넉한 풍경 아래, 그 산세와 묘하게 닮은 한옥 카페 ‘풍물기행’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안성 남사당패의 상징인 바우덕이의 흥과 멋을 공간으로 번역해 놓은 듯,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짓을 건넨다.
카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마당을 가득 채우는 구수한 아궁이 장작 냄새. 도시의 매캐한 공기에 익숙해진 코끝을 자극하는 그 타닥타닥 타오르는 나무의 숨결은, 순식간에 우리를 시골 할머니 댁의 어느 따뜻한 아랫목으로 데려다 놓는다.
카페 한쪽 구석 새장에서는 새들이 지저귀며, 내부는 마치 시간이 멈춘 박물관 같다. 곳곳에 놓인 빛바랜 성냥갑, 손때 묻은 옛날 잡지, 낡은 담배 같은 것들이 레트로한 감성을 자아낸다. 이곳의 메뉴판 역시 민속의 정겨움과 현대적 세련됨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된장 라떼, 궁중 떡볶이, 신선로 빙수 같은 독특한 퓨전 메뉴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중 백미는 단연 솥으로 직접 쪄내는 식빵이다. 뚜껑을 열면 하얀 김과 함께 드러나는 뽀얀 속살은,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극강의 부드러움을 선사한다.
가게 밖에서는 장작 타는 냄새가 공간을 감싸 안았다면, 안에서는 갓 찐 빵 냄새와 커피 향이 어우러져 또 다른 종류의 구수함을 만들어낸다. 커피 한 잔에 덤으로 내어주는 작은 코인 초콜릿의 달콤함까지 더해지면, 간단한 브런치를 즐기기에 이보다 더 여유로운 곳이 있을까 싶다.
서운산, ‘상서로운 구름이 머무는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은 머무는 이에게 진정한 휴식을 허락한다. 맛과 멋, 그리고 여유가 흐르는 풍경 앞에서 문득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좋은 곳에 오면 귀한 사람이 생각나듯, 다음엔 꼭 그분들의 손을 잡고 다시 오고 싶은, 그런 따뜻한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