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pus Script : 약수터식당과 궁중해물탕

경기 안성시 양성면 만세로 667

by 그리울너머

약수터식당과 궁중해물탕
화면 캡처 2025-12-25 111927.png

한때 안성시 양성면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 고향에 온듯한 시골의 느낌을 주는 이곳에 숨겨진 맛집을 알리고 싶은 이유는 한적한 시골에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곳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의 이름은 만세로이다. 도로의 이름처럼 1919년 3.1 운동 당시, 전국에서 가장 격렬한 만세 시위가 펼쳐졌던 '실력 항쟁지'로서의 긍지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도로는 안성 3.1 운동 기념관을 지나 고개와 평지를 오르내리며 길게 뻗어 있다.


어느 시골길과 다를 것 없이 양성면은 작은 시골 동네이다. 나지막하게 등산을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산과, 논, 밭 전형적인 교외의 풍경이다. 가끔씩은 바이크가 줄지어 행진을 하는데 엔진 소리가 만세로의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역사가 깃들어 있어 그런지 안성 만세로 근처에는 한국 최대의 낚시터라 할 정도로 많은 낚시터들이 있고, 칠곡저수지를 끼고 이쁜 카페와 음식점들이 늘어서있다. 또한, 산세가 완만하고 풍광이 좋아 인근에 골프장이 포진해 있다. 라운딩을 마친 골퍼들의 세단, 그리고 인근 칠곡저수지의 카페와 풍경을 찾아 드라이브를 나온 연인들의 차량까지 뒤섞인다.


만세로는 이름의 기운을 빌려 단순한 시골길이 아니다. 낚시, 골프, 드라이브라는 '여가'를 즐기려는 외지인들이 안성의 깊숙한 곳으로 진입하기 위한 주요 동맥이다. 과거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한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졌던 이곳이, 지금은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휴식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바쁜 바퀴 자국으로 채워지고 있다. 고요한 듯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이 길, 그 한복판에 사람들이 기꺼이 찾아가는 목적지가 숨어 있다.


끓어오르는 전골과 산속의 바다
화면 캡처 2025-12-25 115328.png


양성면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곳은 ‘약수터 식당’이다. ‘약수터’라는 이름이 소박한 쉼터를 연상케 하여 묘한 향수를 자극하지만, 은은한 양념냄새와 맛이 있는 반전의 공간이다. 주된 메뉴는 소곱창전골. 안성 토박이보다는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지인들에게 더 특별한 성지로 통한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넓은 주차장이 만차가 되는 비결은 단순하고도 어렵다. 개인적인 평가로 ‘잡내’를 완벽하게 지워냈다는 것. 곱창을 손질하고 특유의 냄새를 없애는 과정은 단순한 노하우를 넘어 지난한 인내를 요한다. 전골냄비 위로 피어오르는 잡내 없는 깔끔한 향기. 그것은 재료를 다듬는 주인의 손길이 그만큼 매섭고 치열했다는 증거다. 주방의 치열함과는 반대로, 넓은 홀을 가득 메운 손님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종업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는 전골의 풍미를 한결 더 돋운다.


그 바로 옆에는 또 다른 ‘궁중 해물탕’이 반긴다. 약수터 식당의 긴 대기 줄을 피해 우연히 발을 들였다가, 의외의 맛에 단골이 되었다. 궁중 해물탕은 산속 내륙에서 항구보다 싱싱한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뚝배기 전복과 산더미처럼 쌓인 해물찜은 신선함 그 자체다. 산속에서 신선한 해물을 내놓는다는 이 기분 좋은 역설은, 그만큼 재료의 회전이 빠르고 관리가 철저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약수터 식당의 곱창전골이 진한 자극을 준다면, 이곳의 해물요리는 한결 담백하고 유순하다. 양념으로 음식의 맛을 덮지 않고, 보다 담백해 신선함과 감칠맛을 투명하게 잡아내었다. 무엇보다 주방과 홀을 지키는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분주한 손길에서는 고향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가게 앞, 빈틈없이 늘어선 차들이 마치 명절날의 귀성길을 연상케 하는 풍경. 그것은 아마도 그 투박하고 따뜻한 집밥의 온기를 찾아온 사람들의 행렬일지 모른다.


두 식당은 전골과 찜이라는 비슷한 온도를 지녔지만, 고기와 해산물이라는 전혀 다른 재료로 손님들에게 미식의 즐거움을 선물한다. 유동 인구가 적은 시골의 외진 입지라는 불리함을 오직 수많은 종업원의 능숙한 움직임과 타협 없는 신선한 재료와 정직한 ‘맛’ 하나로 극복했다는 점이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목요일 연재
이전 03화The Opus Script : 풍물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