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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Jun 27. 2021

나는 나, 그리고 너는 너

아이의 독립적인 세계를 존중하겠다는 다짐

젊은 날 아빠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엄마는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너희들 보고 여태 살았지. 너희라도 없었으면......"

엄마로서는 우리가 그녀 삶의 이유이자 원동력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나,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진작 새 출발을 할 수도 있었던 엄마의 발목을 잡은 가해자 중 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미안해진다. 내가 나름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낸 데는 발목 잡힌 엄마의 인생이지만 꽤 괜찮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이유도 있으리라. 나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착한 딸이었다.


엄마에게는 늘 고맙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한, 그리고 나의 성장과정에 함께 하며 지금의 나를, 나라는 존재뿐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생각과 기억과 가치관의 많은 부분을 만들어준 사람이 엄마니까.

하지만 가끔 내가 살아온 삶이 나의 삶인지 엄마의 삶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는 엄마 인생의 가장 큰 산물로 여겨졌고 내 성공은 곧 엄마의 성공, 내 기쁨은 곧 엄마의 기쁨, 내 좌절은 곧 엄마의 좌절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택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엄마의 기준이 의식되었다. 직장을 구할 때나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원하는 직장,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엄마도 마음에 들어할까 늘 궁금했다. 어쩌다 엄마와 의견 충돌이 생기면 나는 내 주장을 굽히지도 않을 거면서 엄마의 의견을 귓등으로 흘리지도 못해서 마음속으로 끙끙 앓곤 했다.

우리 모녀의 이야기만은 아니지 싶다. 많은 엄마들이 자식을 통해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어 하고, 자식에게 올인한 인생을 자식의 성공으로 보상받고 싶어 하는 걸 주변에서도 자주 듣고 보았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나는 내게 당부했다. 너로 인해 내 인생이 이렇게 변했다, 라는 말은 하지 말자고. 그 의미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내 삶을 그녀의 인생에 종속된 것처럼, 혹은 그녀의 삶을 내 인생에 종속된 것처럼 여기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살고 싶었다.

아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나를 위해서였다. 엄마가 되더라도 내 삶을 살고 싶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을 가져서가 아니라 내 개인의 성취로 얻어지는 만족과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

아이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전보다 더 밀도 있게 살다 보면 엄마로서 보호자의 역할에 구멍을 내지 않고도 내 삶은 이전처럼 유지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세상으로 나온 아이를 보며 지금은 약간 혼란스럽다. 10개월간 내 몸의 일부였던 아이는 지금 내 젖을 먹고 자란다. 나는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하루 일과를 모두 챙기고 있다. 차라리 뱃속에 있을 때 더 타인에 가까웠던 아이는 이제 나 자신이나 다를 바 없는 대상이 되었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위해 나는 내 필요를 읽는 것보다 더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아이의 필요를 관찰하고 있다.

아이가 웃으면 나도 웃음이 나고 아이가 서럽게 울면 내 마음도 슬퍼진다. 내가 이렇게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아이의 감정은 내 감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 둘을 이어주던 탯줄은 그저 영양분만 전달하는 매개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노트북을 열었다가도 빤히 나를 쳐다보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그 눈동자가 자꾸 내게 말을 걸어와서 나는 다시 내가 아닌 그녀의 엄마로 돌아가게 된다.


조리원에서 아이의 이름으로 된 SNS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내 계정을 두고도 따로 만든 첫째 이유는 내 계정을 아이의 사진으로 도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내 지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이의 사진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갖기 전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얼굴의 아이들이 지인들의 SNS 공간을 모두 차지하고 있어 약간의 피로를 느끼기도 했었다. 아이 엄마가 되었지만 내 계정은 여전히 나의 계정인 상태로 남겨두고 싶었다. 아이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모습으로 채우고 싶었다.

대신 아이의 계정에는 아이의 사진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아이가 크면 보여줄 생각이었다. 아이 사진을 궁금해하는 친구들 몇 명에게만 계정을 공유하고 다른 지인들과 소통하는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 하나가 내 소식을 물어왔다.

"요즘 바빠? 인스타도 안 하고."

응? 매일 하는데, 하며 내 계정에 들어가 보니 아이 낳기 전에 찍은 사진이 마지막. 아이에게서 분리하고 싶어 떼어둔 내 계정은 아이가 생긴 후로 잠정 휴업상태가 되어버린 거다.

이쯤 되니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던 포부가 가소롭다. 아이는 아이대로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아마 당장은 어려울 듯싶다. 그래도 아이가 잠든 지금, 이 깨알 같은 시간을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책도 읽고 지금처럼 글도 쓴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글의 소재마저도 전부 아이가 되어버렸지만.

나를 위한 삶은 내 계정처럼 휴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축근무 수준으로 이어질 것 같다.


당분간 서로 포개어진 삶을 살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는 타인. 내가 아니다. 지금은 내가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지만 자라며 아이에게도 친구가 생기고 경험이 축적되어 그녀만의 세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미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아이.

가끔 아이에게 찾아올 선택의 상황들을 남편과 상상해본다. 예를 들면,

"아이가 만약 대학에 가기 싫다고 하면?"

"아이가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아이가 동성을 사랑한다고 하면?" 같은.

상상일 뿐임에도 우리는 당황하고 머뭇거리다 결국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했던 것과 별반 차이 없는 대답을 하고 만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늘수록 아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은 더 커져서 아이에게 정말 선택의 순간들이 찾아왔을 때 그녀를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하지 못하게 될까 봐 겁이 난다.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은근한 압박을 주게 될까 봐 두렵다.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나 자신만큼이나 사랑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 그리고 너는 너.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에게 필요한 조언과 축복을 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연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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