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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Nov 12. 2019

때로는 가족보다 더 힘이 되는

험난하고 낯선 육아의 순간들을 함께 하는 내 육아 동지들

가까운 가족보다 타인이 더 내 편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육아를 하면서 종종 그렇게 느꼈다. 부모님도 남편도 쉽사리 헤아리지 못하는 내 상황과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이들은 언제나 나의 육아 동지들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멋모르고 발 들인 육아의 세계에서 때로는 길잡이가, 때로는 나란히 걷는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들이다.


오늘은 조리원 동기 언니네 집에 갔었다. 우리 아이와 같은 날 태어난 아들을 키우는 언니와는 산부인과에서 처음 만났다. 퇴원 후 연계된 조리원으로 나란히 들어가 종종 얼굴을 마주치다 연락처도 주고받게 되었다.

조리원에서 나온 직후부터 언니와는 하루에도 수백 건의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하루를 8 등분하여 3시간마다 수유를 하고 있었는데, 수유시간마다 휴대폰을 열면 언니의 메시지가 떠있었다. 우리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대화를 몇 개월간 주고받았다.

깊은 새벽 일어나 수유를 하고 트림까지 시키고 나면 잠이 깨버릴 때가 많았다. 새벽 4시, 어둠이 가득 들어찬 방 안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누워있으면 남편의 코 고는 소리로는 위로되지 않는 외로움이 나를 감싸고돌았다. 그럴 때면 이불로 불빛을 가리며 휴대폰을 열었다.

- 언니, 자?

- 아니. 애가 울어서 못 자고 있어. 너는?

- 나도. 잠이 깨버렸어. 곧 해 뜨겠다.


조리원에서 나와 언니를 처음 만난 게 출산 후 백일 무렵이었으니 근 3개월을 랜선 친구로만 지낸 셈이다. 그 3개월은 내 몸과 마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출산으로 열렸던 뼈가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아이를 안고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느라 손가락 마디마디에 통증이 찾아왔다. 어느 날은 평생 걸린 적 없던 방광염에 걸려 비명이 터져 나오는 고통을 맛보았고 또 어느 날은 머리카락이 한 뭉텅이씩 빠지는 바람에 두려움에 떨었다.

내 고통을 모두 나누어줄 것만 같았던 남편은 의외로 큰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출산이라는 행위를 직접 겪어보지 못한 남편으로서는 이 고통을 상상하기가 도무지 어려울 것이었다. 아프다는 말이 엄살이나 투정처럼 보일까 봐 남편에게는 말을 꺼내기가 주저되었다. 그쯤 남편을 대하는 마음은 더러 못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왜 너는 그렇게 잘 지내? 우리 둘이 같이 만든 아이인데 왜 아픈 건 나 혼자야?'

그 시기 나와 같은 변화를 겪고 있던 언니는 내 고통을 백 프로 공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손가락 아프지 않아?" 하면,

"응. 난 요즘 손목이 그렇게 아프네. 욱신욱신." 하며 받아쳐주는 사람.

몇 마디 대화로 통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고통이 단지 나 혼자만의 고통은 아니라는 사실을, 출산 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사실을 확인받으며 안도했고 그래서 몸의 고통은 계속될지언정 마음의 외로움은 덜어내는 과정을 언니와 함께 해왔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자리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와 그녀의 생후 8개월 된 아들. 언니와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연락하고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지는 데는 언니의 외향적인 성격도 한몫을 하겠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는 나 역시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쉽게 말을 나누는 편이다. 마트 수유실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와 마주치면 거리낌 없이 인사를 나누고 '몇 개월 됐어요?'를 시작으로 서로 질문하고 답하며 정보를 주고받는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육아 동지라는 사실이 일종의 연대감을 준다. 나이가 몇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사는 곳이 어디든 관계없이, 오로지 또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만들어진 끈끈한 연대감.


"첫째 가졌을 때는 이사온지 얼마 안 돼서 친구가 하나도 없었어요. 말도 안 통하는 애랑 둘이서만 집에 있으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던지. 몇 번을 울었는지 몰라요. 지나고 보니 그게 우울증이었더라고요. 그래서 둘째 낳고는 조리원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친구를 만들었어요. 요즘은 매일 나가요."

처음 만난 육아 선배는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다. 이유식은 힘들면 사 먹여요. 요즘 파는 것도 잘 나와요. 좀 넘어지고 다쳐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애들이 보기보다 똑똑해서 한번 넘어진 자리에서는 조심하더라고요. 듣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나는 이야기들.

세 아이가 돌아가며 울고 세 엄마는 번갈아가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안고 리듬을 탔다. 하지만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고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처음에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다 나중에는 좋아하는 옷, 맛집, 그리고 남편과 시댁에 대한 이야기도 빠짐없이 등장했다.

남편들의 퇴근시간이 되어 마지못해 헤어졌지만 이후에 만들어진 단톡방에서 대화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육아 동지들에게도 위로를 얻는다. 고비마다 찾아오는 궁금증을 해결하는 창구는 소아과 선생님보다 맘카페 회원인 선배 엄마들일 때가 많다.

누군가 카페에 '여행 중인데 아이가 아파요.'라는 글을 올리면 해당 지역에 사는 엄마들이 제 일처럼 걱정하며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 정보를 알려준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나는 함께 안도한다. 내가 서투르고 부족하지만 도움을 청하면 나서서 도와줄 수많은 엄마들이 있다는 사실에.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 나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 오빠를 좋아했는데, 같은 반에 그 오빠를 좋아하는 친구가 둘이나 더 있었다.

여기서 웃긴 대목은 경쟁관계에 있었던 우리 셋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던 것. 빼빼로데이에는 셋이 손을 잡고 나란히 그 오빠네 반으로 가 빼빼로를 전달했고 심지어 편지 내용도 서로 공유했다. 오빠에 대한 팬심이 당시의 우리를 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팬심은 얼마 못가 흐려졌고 두 친구와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그 시절 우리의 연대는 가벼운 풋사랑처럼 시작해 금방 끝이 났지만, 지금 내 육아 동지들과의 연대는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때로는 가벼운 육아 고충을 공유하고 때로는 육아를 힘들게 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분노하며.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육아에 대한 고민은 다양해지겠지만 서로 북돋우고 격려하며 함께 걸어 나갈 수 있는 육아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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