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예지 Jan 28. 2020

엄마 되어 봐라. 너도 똑같다.

엄마가 되고서 비로소 알게 된 내 엄마의 마음

이유식을 시작하고 얼마 후 아이가 설사를 했다. 하루 한두 번 싸던 똥을 일곱 번씩이나 쌌다. 똥을 쌀 때마다 씻기고 닦는데도 엉덩이 주변이 빨갰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쓰라린 발진인데 아이는 아픈 줄 모르고 여기저기 다니기 바쁘다. 식탁 아래, 싱크대 절수 패드 주변, 빨래건조대 아래까지. 그렇게 온몸을 밀고 다니던 아이가 잠들면 바지를 벗기고 기저귀를 연다. 발진이 난 부위에 연고를 바르고 기저귀를 열어둔 채 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삼십 분째 한 손으로는 아이의 허벅지를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자니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마가 가끔 들려주시던 내 어린 시절 이야기.


나는 태어난 지 3개월이 채 안되어 입원을 했다. 병명은 폐렴이었다. 간호사는 내 발에 링거 바늘을 꽂고 엄마에게 말했다.

"바늘 안 빠지게 잘 붙잡고 계세요."

그날 밤 엄마는 내가 움직이면 큰일이라도 날까 봐 밤새 내 발을 붙잡고 있었단다. 잠결에 놓칠까 봐 힘겹게 잠을 쫓고 있었을 젊은 엄마의 모습이 마치 직접 본 것처럼 그려진다.


말 안 듣는 딸에게 엄마들이 단골로 하는 말이 있다.

"꼭 너 같은 딸 낳아봐라."

가시 돋친 말로 엄마에게 상처를 줄 때, 내 일에 상관 말라며 선을 그을 때마다 우리 엄마도 즐겨하시던 말이다. 그럼 나는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받아치곤 했다.

"응! 제발. 나 같은 딸 낳으면 소원이 없겠다! 난 쿨한 엄마가 될 거야."

쿨한 엄마. 쿨하지 못한 엄마에 대한 불만이 은근히 묻어난 표현이었다. 자식일이라면 일단 온몸을 던지고 보는 엄마. 자식 앞에서는 배고픈 것도 목마른 것도 힘든 것도 졸린 것도 잊고 마는 엄마. 그런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은 고마움보다 답답함에 가까웠다. 그런 마음이 앙칼진 목소리가 되어 '쿨한 엄마'라는 소망으로 나온 것이다. 그때는 정말로 그랬다. 엄마처럼 자식 일에 안달복달하며 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던 엄마의 이어지는 한마디.

"나중에 보자. 엄마 되면 너도 똑같다."

잠든 아이의 두 다리를 삼십 분째 붙잡고 있는데, 자꾸 내 모습에 엄마가 겹쳐진다. 나도 똑같아질 거라던 엄마의 말에 이런 모습도 포함되어 있었던 걸까.


"많이 먹으라"는 말이 어릴 때는 정말 싫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생선살을 발라 밥 위에 얹어주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엄마는 손도 대지 않고 밀어주는 것도 싫었다. 나도 손이 있고 입이 있는데. 알아서 먹으면 되는걸 왜 저럴까.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딸이 엄마가 되어 그녀의 딸에게 이유식을 먹인다. 아이가 평소보다 덜 먹으면 애가 탄다. 아이에게는 이미 관심 밖이 되어버린 숟가락을 나는 끝내 놓지 못한다. 혀로 밀어내는 아이 앞에서 뺏어먹는 시늉을 하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맛본 것 같은 연기를 한다. 아이가 몇 숟갈 더 먹어주면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엄마가 되면 나도 똑같아질 거라던 엄마 말에는 이런 것도 포함되어 있었겠지? 내가 밥상 앞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엄마가 되고서야 비로소 엄마의 마음이 읽힌다.


두 딸이 독립하고 엄마는 아이가 되었다. 딸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엄마가 먹고 싶은 음식을, 딸들이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엄마가 가보고 싶은 장소를 이제야 찾기 시작했다.


'어떤 엄마'가 되겠다던 다짐은 아무 수식어도 붙지 않은 '그냥 엄마'가 되기에도 벅찬 나의 부족함 때문에 잊히고 말았다. 한때는 '왜 저럴까' 싶던 엄마의 모습들이 이제는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가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나 어릴 때는 우리 동네에 병원도 없었잖아. 우리 집에 차도 없었고. 매번 어떻게 데리고 다녔어?"

"그땐 다들 그랬지 뭐. 버스가 시간 맞춰오던 시절도 아니었으니까 일찌감치 나가서 도로가에 서 있으면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지. 그래도 다녀오는 길에 은행도 줍고... 재밌었지."

"오며 가며 하루가 다 지나갔겠다. 그러고 또 집에 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엄마 힘들었겠다."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서 엄마 마음을 보듬을 수는 없지만 뒤늦게라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꺼내본 한마디는 엄마의 추억놀이에 불씨가 된다. 엄마의 이야기에는 어김없이 내가 등장하고,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을 소환하면서 동시에 내 아이가 맞이할 순간들도 함께 상상한다. 그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아이가 아니라 엄마의 역할을 담당할 내 모습도.

나도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엄마가 내게 해주신 걸 겨우 흉내만 내고 있는 것 같은데.


엄마가 되면 똑같아질 거라던 말이 엄마를 닮으려 애쓰는 내 모습을 통해 사실이 되어간다. 이제 슬쩍 겁이 난다. '꼭 너 같은 딸 낳아보라'던 말도 왠지 사실이 될 것만 같다.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또박또박 말대꾸하던 나, 문제집 살 돈으로 떡볶이 사 먹던 나, 엄마가 도서관에 데려다주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농구대 쪽으로 달려가 옆 학교 오빠들을 응원하던 나. 과거의 내가 우리 아이를 통해서 그대로 재현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딸들은 엄마에게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딸을 낳아 치르는 걸까. 그렇다면 말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효도해야겠다. 그리고 우리 딸에게도 미리 말해줘야지.

'딸. 엄마 말 잘 들어. 너도 나중에 너랑 똑같은 딸 낳을 거니까 미리미리 잘해두는 게 좋을 거야.'

이전 06화 7개월 만에 극장에 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