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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Jan 30. 2020

아이 낳고 300일째 매일 하는 일

친한 동생 A는 나보다 1년 먼저 아이를 낳았다. 출산휴가 후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육아휴직 중이던 그녀와 종종 만났다. 당시 8개월 딸을 키우던 그녀는 따끈따끈한 경험담을 아낌없이 쏟아주었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나는 기본개념조차 몰라 상사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입직원처럼 멍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A는 그 무렵 부모님들의 요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요구내용은 아이 사진을 보내달라는 것.

"'요즘 우리 손녀 얼굴 보기가 참 힘드네', 하시길래 아차 싶어 대화창을 훑어보니 글쎄 이틀 전에 사진을 보냈지 뭐예요? 하루만 건너뛰어도 난리라니까요!"

A는 마치 나를 통해 자신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듯이 당부했다.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보내기 시작하면 나중에 후회해요. 사흘에 한번? 아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만 보내요. 꼭이요!"

솔직히 그 말을 들으면서 A가 그녀 답지 않게 야박하게 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주를 보고 싶어 안달하는 부모님께 사진 하나 보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고. 그녀가 신경 써 해준 조언은 다른 조언들과 함께 머릿속 어딘가 대충 넣어두었다.

내 아이가 당시 그녀의 딸보다 더 자란 지금, 뒤죽박죽 넣어둔 이야기들이 뒤늦게 하나씩 툭 튀어 오른다. 아. 그 말이 바로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9개월 전 아이가 태어난 새벽, 남편을 시켜 아이 사진을 찍고 가족들에게 보냈다. 남편과 나의 유전자를 받은 생명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고 놀라웠다. 조리원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아이의 얼굴을 사진에 담아 부지런히 보냈다. 아이의 모습을 우리 부부만 보기에는 아까웠다. 신생아 때는 정말이지 아이가 조금씩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 모빌을 바라보고 발버둥을 치고 눈을 맞추는 모든 순간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카메라에 담게 되었다.

양가에서 첫 손주인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다. 부모님들의 관심은 온통 아이에게로 쏠렸다. 수시로 사진을 보내달라셨고 아이의 안부를 궁금해하셨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쁜 날에는 사진 한 장 찍기가 솔직히 버거웠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 스마트폰을 찾아들고 사진을 찍어 보내는 과정이 귀찮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와 내내 함께 있으면서 사진을 통해서라도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요구를 외면하기가 어쩐지 치사하다는 생각에 귀찮은 마음을 눌렀다. 덕분에 아이의 사진 폴더에는 매달 천장이 넘는 사진이 쌓여있다.

아이가 태어난 지 303일째 되는 오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사진을 보냈다. 엄마와 동생이 있는 대화방에 한번, 시댁 가족들이 모여 있는 대화방에 또 한 번, 총 두 번이다. 가족들의 대화방은 아이의 앨범이 되었다. 단체 대화방이 있으니 망정이지 그조차 없었다면 매일 여섯 번씩 사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이라면 A는 여전히 귀찮다는 이유 하나로 손녀를 보고 싶어 하는 조부모의 마음을 몰라주는 야박한 사람으로 남겠지. 하지만 A는 결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양보하고 배려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 그녀가 '꼭'이라는 부사를 붙여가면서까지 사진 보내기를 자제하라고 당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 애가 살이 빠졌나. 볼이 홀쭉하네.

- 목이 추워 보이네.

- 양말이 다 벗겨지려고 하네. 제대로 좀 신겨주지.

- 옷이 없나. 또 같은 옷이네.

아이의 사진에 댓글처럼 달린 가족들의 반응이다. 언제부턴가 부모님들은 아이의 사진에서 '숨은 문제점 찾기' 놀이를 하신다. 어려서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잔소리로부터 겨우 벗어났는데 다시 듣는 입장이 되니 유쾌하지는 않다. 괜히 마음이 뾰족해진다.


육아커뮤니티의 관련 게시글들. 전에는 '별게 다 고민이다' 했을 일인데 경험자가 되고 보니 격하게 공감되어 한참 웃었다. 세상 며느리 다 같고 세상 부모 다 같구나 싶어.


아이가 사과퓨레를 먹고 질겁하는 영상을 보냈다가 양쪽 부모님께 잔소리를 한 바가지씩 들은 다음날, 나는 사진을 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 우리 지안이는 잘 노나

점심 무렵, 어머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진 보내는 걸 잊으면 저쪽에서 메시지가 온다. '뭐하노', '자나?', '우리 지안이가 궁금하네'. 안부를 묻는 여러 형태의 인사에 숨겨진 목소리는 하나다. '우리 손녀 사진 좀 보내줄래?'

반면 친정엄마의 메시지는 직설적이다. '왜 오늘은 사진이 없노?'

부랴부랴 아이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몇 장을 찍는다. '아, 나 이제 사진 안 보내기로 했는데',라고 후회했을 때는 이미 대화창에 사진을 보낸 후다. 아이의 사진을 찍어 보내는 일은 아이 먹을 것을 챙기고, 기저귀를 갈고, 잠을 재우고, 로션을 바르는 것처럼 또 하나의 일과가 되어버렸다.


30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진을 보내면 잔소리가 돌아온다. (끊임없이 잔소리 거리를 찾아내시는 점은 정말이지 존경한다.) 친정부모님의 잔소리는 바로 받아치고 말지만 시부모님께는 그럴 수도 없어 남편에게 불평을 토로한다. 남편은 잔소리할 거리가 없는 사진을 선별해서 보내자는 해결책을 냈다. 이를테면 도톰한 양말을 신고 목에 손수건을 두른 채 얼굴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깨끗한 상태로 웃고 있는 사진? 하지만 그러자니 사진 보내는 일이 마치 우리의 육아를 부모님께 검사받는 과정인 것처럼 여겨져 거부했다.


일단 머리로는 잔소리를 사랑의 표현방식 중 하나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릴 때 듣기 싫었던 잔소리도 자라고 보니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는 점도 인정한다. 부족한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무탈하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건 어쩌면 잔소리라는 형태로 아직 우리 부부를 키우고 계시는 부모님 덕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휴. 또 지긋지긋한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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