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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Jun 19. 2021

짝사랑은 싫지만 상대가 너라면

오래전부터 한결같이 날 사랑해주는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를 설명할 에피소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중 기억에 남는 하나는 내가 직장에 입사했던 11년 전 어느 여름날의 일이다.


더위는 부쩍 다가왔고 내 자취방에는 선풍기가 없었다. 선풍기보다 퇴근 후 맥주 한잔이 더위를 물리치기에 더 낫다고 여겼는지 그날도 나는 그 사람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사라던 선풍기를 사러 가는 대신 호프집에 앉아 생맥주를 주문했다. 동료들과 한참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집에 없네. 아직 회사야?"

맥주잔을 내려두고 씩씩대며 간 집 앞, 목이 긴 선풍기를 들고 선 땀에 젖은 뒷모습과 마주했다.

"말도 없이 갑자기 오면 어떡해? 회사 사람들이랑 있었단 말이야."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인 맥주 한잔이 미뤄서는 안 될 중요한 업무이기라도 한 것처럼 톡 쏘아붙인 내 한 마디에, 그 사람은 반가운 표정을 얼른 숨기고 갈길 바쁜 사람을 연기했다.

"에구, 내가 중간에 나오게 했구나. 이것만 집에 넣고 얼른 가봐. 나도 버스 타러 가야지."

날 위해 두 시간 거리를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온 그 사람은 그날 저녁도 먹지 못했다는 걸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그렇게 미련한 사람이었다. 내 감정이 가시가 되어 자신을 공격할 때조차 그 사람에게는 늘 내가 먼저였다. 한때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향해있던 내 마음이 친구들에게로, 연인에게로, 남편과 아이에게로 옮겨간 후에도 그 사람은 한결같았다. 지금까지도 쭈욱.


빈틈도 없고 조건도 없는 사랑, 흐르고 넘쳐서 때로는 부담스럽다고도 여겼던 사랑의 주인공은 우리 엄마다.

엄마는 왜 내가 이유 없이 짜증을 부려도 오히려 미안해할까?

엄마는 가진 걸 다 주고도 왜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까?

엄마에게 한 적 없는 질문들은 앞으로도 영영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물어봤자 엄마가 대답하지 못할 거라는 걸 이제 나도 알기 때문이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그렇게 된다. 엄마가 되어보니 나도 그렇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로 시작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대학시절 그 구절을 읽으며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대입해보다 좌절하곤 했었다. 자존심을 세우고 지기 싫어하고 앞에서는 사랑한다면서 돌아서서는 서로의 유불리를 따지기도 하던, 누가 진심으로 사랑하냐 물으면 갸우뚱하며 '그런 것 같은데?'라고 되묻게 되는 관계였다. 불꽃 튀는 감정으로 시작한 만남들이 차츰 잦아들다 꺼지기를 반복하자 나는 의심했다.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긴 할까.


병원에서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피가 엉겨 붙은 쪼글쪼글한 아이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쏟는 대신 '이 아이가 정말 내 아이라고?'를 되뇌었다. 아이로 인해 달라질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나를 대체할 사람이 없다는데서 오는 무거운 책임감, 나를 영영 잃어버릴까 싶은 불안감이 덮쳐올 때마다 의심했다. 엄마가 되면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던 사랑이 나만 슬쩍 비켜 간 건 아닌지를.


하지만 이제는 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 사랑하고 있다고.

'엄마 자격증' 같은 게 있다면 아직 한번에 철썩 붙을 자신은 없지만, 랑에 빠진 건 분명하다고.

아이는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한없이 여리고 작은 모습으로 와 아끼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했고, 표현에 서툴러 내가 먼저 그 마음에 귀 기울이게 했으며,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해 나로 하여금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하게 했다. 배가 고파도 아이의 배를 먼저 채우고, 아이가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기를 바라며, 시간과 돈을 씀에 있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노력만큼 결과가 따르지 않아도 묵묵히 기다리며 참는 법을, 지난 2년간 아이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아이는 참 대단한 존재다. 불과 2년 만에 눈을 맞추고 걷고 뛰고 의사를 표현하는 다양한 능력을 갖춘 데다, 서른 넘은 엄마에게 사랑을 가르치기까지 했으니까.


2년 사이 아이의 머리카락도 아이만큼이나 많이 자랐다. 감기 든 아이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쥐어 묶는 손으로 아이가 느낄 불편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나도 우리 엄마처럼 딸이 아프면 덩달아 아프고 딸이 기쁘면 덩달아 기뻐하며 내 삶에 아이의 삶을 포갠 채 살게 될 것 같다.

엄마는 딸. 엄마인 나도 내 엄마에게는 소중한 딸이니 존중받고 싶고 투정하고 싶다는 의미로 쓴 첫 육아일기의 제목이다. 이제와 보니 예언 같은 제목이었다. 마침내 엄마는 딸의 삶을 내내 품고 살게 될 거라는.


깊은 새벽 잠에서 깬 아이가 두리번거리며 내가 옆에 누워있음을 확인하고 안도하며 다시 잠들 때, 퇴근길에 아이가 두 팔 벌려 내게 달려올 때, 나는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를 느낀다. 아주 오래, 건강히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아이는 내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으니, 나는 평생에 걸쳐 아이에게 사랑받는 법을 알려줘야지.

우리 엄마처럼 끝 모르는 짝사랑이 될지라도 기꺼이 감수해야지.



오늘 아침, 엄마 출근 후에 아이가 울었다고 한다. 아주 일방적인 짝사랑은 아닌 모양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고린도전서 13장 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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