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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Jan 20. 2020

백일은 기적

백일 동안 건강히 자라줘서 고마워 내 딸, 앞으로도 잘 부탁해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째 되는 날이다. 내가 엄마 된 지 백일째이기도 하다. 2.79kg으로 태어난 아이는 백일째에 딱 5.6kg을 찍었다.

백일 동안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법을 터득했다. 젖을 먹다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홱 돌려 반짝이는 화면에 몰두한다. 내가 다시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려 해도 잔뜩 힘을 주고 버틴다. 기분이 좋으면 생글생글 웃다가 불편하면 와앙 울어버린다.


백일 된 아이의 최고 놀잇감은 엄지손가락. 뿌리까지 넣어 쭉쭉 빨아 당긴다. 손가락이 녹는 재질이 아니라 다행이다. 엄지 옆에 달린 네 손가락이 얼굴에 상처를 내고 입술 주변은 침으로 헐어있다.

손가락을 빨며 스스로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모빌 아래 눕혀두면 까르르 웃으며 놀다 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스르르 잠이 든다.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투정하던 나는 이제 애착형성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염려될 만큼 여유로워졌다.


지금도 아이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잠들었다. 잠든 아이를 보고 있으면 가끔 눈물이 난다. 보동보동하게 살이 오른 볼과 아빠를 꼭 닮은 눈매,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를 다섯 방향으로 고르게 뻗은 자세, 가슴부터 배까지 온몸으로 만들어내는 호흡, 보드라운 살결과 내 손이 닿은 온몸 구석구석, 잠결에 저도 모르게 침대 바닥에 툭 소리가 나도록 떨어뜨리는 발차기와 머리를 양방으로 굴리는 요상한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신기하다. 내 배에서 나온 생명이 옆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감사하다.


백일은 기적이라고들 말한다. 내게도 아이의 백일은 기적이다. 아이가 백일을 맞이한 것은 정말이지 감사한 사건이다. 우리 부부의 숱한 바람들이 예외 없이 이루어졌다는 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 아이가 생긴 걸 알고는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임신 초기는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무의식적으로 난간을 붙잡았고 좋아하는 파인애플을 눈앞에 두고도 참았다.

매 순간 병원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동시에 두려워했다. 초음파 화면을 통해 아이의 움직임을 포착하고나서야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병원에서 아이의 무사를 확인하고 돌아서면 또 기도가 시작되었다. 다음번 병원에 올 때까지 부디 건강하기를. 임신한 여자들은 가슴에 커다란 솜뭉치를 하나씩을 품고 산다. 그 솜뭉치는 축축하게 젖어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졌다가를 반복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신생아 때는 아이를 만지기도 두려웠다. 마치 남의 아이를 보면서 그 애 엄마에게 묻듯, 조리원 간호사와 산후도우미 분께 물었다. "혹시 아이 잠깐 안아볼 수 있을까요?"

손세정제를 주방과 욕실에 각각 하나씩 두고 아이를 만질 때마다 손을 씻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가 숨을 쉬고 있나 확인한 날들도 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가끔 잠든 아이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아, 숨 쉰다"라며 안도하기도 한다. 그렇게 매 순간 아이의 무사를 바란 나날들이 누적되어 오늘이 되었으니 백일은 정말이지 고마운 날, 기적같은 날이다.


신생아 시기의 아이 사진을 넘겨볼 때마다 놀란다. 지금의 부쩍 자란 아이와 비교되어서다. 선배 엄마들이 하는 아이들이 다 커버려서 서운하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아이가 훌쩍 자라 있기를 바랐다. 스스로 밥도 먹고, 똥도 싸고, 목욕도 하는 시기가 얼른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사진 속 지금보다 작고 여린 아이를 보니 벌써 그립다. 원숭이를 닮았다고 생각했던 주름진 이마도, 몸을 잔뜩 웅크렸다 온몸으로 기지개를 켜던 모습도.

아이와 24시간을 붙어지내다보니 아이가 자라는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3개월 치 사진을 보니 지금의 아이는 다 큰 어린이 같다. 아이가 정말로 어린이가 되면 오늘이 그리울 테지 싶어 잠든 아이의 얼굴을 괜히 양손으로 감싸 보고 머리카락도 쓸어본다. 눈으로 꾹 찍어 가슴에 저장도 하고.


아이의 백일은 손수 준비하고 싶었다. 요즘 아이가 혼자서도 잘 놀아주니 백일 준비에라도 정성을 쏟기로 했다.

병원에서 찍어준 아이의 발도장으로 액자를 만들고 나무 그릇을 주문했다. 배경으로 쓸 배너도 손수 만들었다. 아이의 백일을 위해 뭐라도 해보고 싶다던 남편은 전날 자정을 회사에서 보내고 새벽에 귀가해 삼신상을 준비했다.

당일 아침, 삼색 과일과 아침에 찾은 따뜻한 떡을 상에 올리고 모처럼 외출복을 입은 아이를 앉혔다. 평소라면 자고 있을 시간에 일어나 불편한 옷을 입고 낯선 의자에 앉은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꽤 잘 버텨주었다. 오른팔을 팔걸이에 턱 걸친 포즈며 카메라를 쳐다보는 똘똘한 눈빛이 모두를 웃게 했다.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던 꼬맹이에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둘 생긴다.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역할은 줄겠지. 아이가 내 도움 없이 의자 위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걸 보니 훗날 스스로 밥을 먹고 똥을 싸고 목욕을 하는 날이 오면 마냥 후련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백일 맞은 아기. 포즈는 사장님


백일상 앞에서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난 후 멀리서 아이의 백일을 축하해주러 오신 가족들을 모시고 식사를 했다. 몇 번 외출이 반복되니 이제 아이도 적응이 되었는지 낯선 장소에서도 곧잘 잠이 들고 깨어있을 때도 가게 떠나가라 울어 젖히는 일이 거의 없다. 덕분에 푸짐한 한상을 기분 좋게 비우고 근사한 카페로 이동해 차도 한잔씩 마셨다.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관심은 오로지 아이에게 쏠려있다. 아이의 미소를 한번 얻어보려고 환갑 지난 두 분이 앞다투어 재롱을 부리신다.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는 아이의 눈빛과 손짓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가 부여된다. 오늘 찍은 사진을 나중에 아이와 함께 넘겨보면서 말해줘야겠다. 미처 사진에 다 담지 못한 넘치는 사랑과 축복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있었노라고.


겨우 백일을 맞이했을 뿐인데 엄마는 감개무량하다.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우는 아이를 안고 덩달아 울고 싶던 시간, 그 옆에서 세상모르고 코 골며 잠든 남편을 향했던 야속한 마음, 변해버린 몸 때문에 가졌던 두려움과 걱정,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던 상실감. 이 모든 감정 한편으로 밀어 넣고 말해주고 싶다.

백일 동안 잘 자라줘서 고마워 내 딸.

그리고 나도. 나도 고생했어.


<2019.7월 중순, 아이 백일 언저리에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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