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예지 Jun 27. 2021

마음에 돌덩이 하나

아이가 아픈 날 엄마는 슬픈 날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본능적으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살피고 귓불을 살피고 팔꿈치 안쪽과 손목, 발목, 그리고 엉덩이까지 고루 살폈다. 어제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개진 것 같다. 마음이 또 한 번 쿵 내려앉는다. 로션을 듬뿍 덜어내 피부에 보호막을 씌우듯 꼼꼼히 바른다. 옷을 살포시 들추어 옆구리와 겨드랑이까지 꼼꼼히. 빠트리는 곳이 한 곳이라도 있으면 큰일 날 것처럼 구석구석 건드린 탓에 아이가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한다.

"엄마가 미안해."

습관처럼 중얼거리지만 이제는 정확히 무엇을 두고 미안하다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이의 피부에 문제가 생기도록 제대로 조치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밤사이 상태가 더 악화되는 동안에도 나는 편하게 잔 것이 미안하고, 로션을 바르다 아이를 뒤척이게 만든 것도 미안하고. 온통 미안한 일뿐이라.


조리원에서부터 약간의 태열이 올라있던 아이의 피부는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더니 100일 무렵부터 귓불에서부터 붉은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것이 점차 오른쪽 팔꿈치 안쪽, 엉덩이, 무릎 안쪽으로 옮겨와 온몸이 울긋불긋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병원에서는 아토피일 가능성도 있다며 연고를 처방해주었다. 아토피라니. 결혼을 앞둔 후배가 아토피 피부라 화장도 못할 것 같다며 하소연하던 일이 떠올랐다. 아토피라면 평생 견뎌내야 하는 만성질환으로 알려진 질병이 아닌가. 태어난 지 반년도 채 안된 아이가 아토피일 수도 있다는 말에 나는 앞이 깜깜해졌다.

처방받은 약은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된 연고였다. 아이에게 벌써 스테로이드 약을 바르는 것이 조심스럽고 겁도 났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어서 2주간 하루에 두세 번씩 최대한 얇게 발라주었다.

바깥 기온은 체감온도 37도까지도 올라가는 무더위에 우리 집은 실내온도를 25도로 유지했다. 에어컨을 24시간 가동하니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소파에 앉아서도 때때로 이불을 덮고 있어야 했다.

새집의 영향일까 염려되어 아이가 거실에 있는 동안 안방을, 안방에 있는 동안 거실을 환기시키는 방법으로 공기정화에도 힘썼다. 하루에 여섯 번씩 이마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꼼꼼히 로션도 발라주었다. 공을 들인 덕분인지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호전된 것인지 피부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제 오후, 아이 피부에 또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여태 매끈하던 등과 옆구리 쪽 피부까지 붉고 거칠거칠한 증상이 번진 것이다. 요즘 눈을 자꾸 비빈다 했더니 눈가 피부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불과 두 시간 전에 바른 로션은 온데간데없고 피부는 메마른 땅처럼 갈라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몸에서는 기운이 빠졌다.

쓰리고 간지러울 텐데도 아이는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엄마의 허둥대는 몸짓을 눈으로 따르고 있었다. 아이의 옷을 벗겨 목욕을 시키고 에어컨의 절전 기능을 해제한 후 온도를 낮추었다. 그리고 하루 여섯 번씩 바르던 로션을 더 자주, 수시로 덧발라주었다. 내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이의 회복과 비례한다는 보장만 된다면 식사도 잠도 얼마든지 거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가 아플 때 모든 엄마들은 대신 아파주기를 소망하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현실에서 아이가 아플 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저 아픈 아이를 바라보고 짠해서 어쩔 줄 모르며 미안해할 뿐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남편과 기형아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우리 아기 어디 아프면 어쩌지?"

"아프면 우리가 책임지고 낫게 해 줘야지."

그때는 속으로 생각했었다. '책임'이라니, 참 무섭다. 아이가 아픈 게 내 잘못도 아닌데.

그랬던 내가 요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내가 주는 걸 먹고 내가 고른 옷을 입고 내가 선택한 장소에서 자고 내가 가는 곳마다 동행하는 아이가 아픈데 내가 무슨 수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까.

먹는 것이라고는 모유뿐인 아이라 내 식단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요즘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었지, 떡볶이에다 찜닭까지 매운 음식도 너무 많이 먹었어, 그뿐이게? 지난주에는 진한 커피가 들어간 아포가토까지 먹었잖아, 임신 중에 피자에다 햄버거에다 온갖 패스트푸드를 다 먹은 건 또 어떻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과오를 들추다 임신 중 남편과 나눈 대화가 떠올라 웃고 말았다. 아이가 아픈 게 내 잘못이 아니라니. 참으로 뻔뻔한 생각이었구나.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더 아프다. 아이는 몸이 아프지만 엄마는 마음이 아프다.

아픔의 크기를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야 없겠지만 아이인 적이 있었던 엄마로서 과거의 기억을 빌려보자면 엄마가 느끼는 마음의 통증은 아이가 느끼는 몸의 통증에 뒤지지 않는다. 엄마는 아이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내내 아프다. 가구 수리기사의 방문을 받으면서도,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도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아픈 아이는 맛있는 밥을 먹는 동안에는 자기가 아픈 줄도 모르지만 아픈 아이를 둔 엄마에게는 맛있는 밥이 없다.


육아를 하면서 도움을 받는 인터넷 카페가 하나 있다. 의심스러운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그곳에서 조언을 구하거나 유사한 사례를 찾아본다. 이번에도 아이의 피부 상태를 몇 가지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오전에 올라온 글만도 이미 10개가 넘는다. 스크롤을 조금 내려보니 자정부터 새벽까지 작성된 글도 꽤 많다.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운 엄마들. '열이 38도를 넘었어요', '아이 얼굴에 상처가 났어요', '아이가 설사를 했어요'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글을 읽다 보면 내 아이가 아닌데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아픈 아이들도 안타깝지만 그 옆에 있는 엄마 마음이 공감되어 안쓰럽다.

'아이가 잠을 너무 많이 자요' 또는 '아이가 웃지 않아요'와 같이 이전에는 웃고 넘겼을 법한 글도 이제는 우습게 보이지가 않는다. 아이의 사소한 행동과 증상 하나하나에도 가슴 졸이며 두려움을 앞세우게 되는 엄마의 마음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유난스럽다는 말도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엄마 경력으로는 훨씬 선배인 사촌동생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

"언니도 이제 엄마 다 됐네."

엄마가 다 됐다는 말이 어쩐지 엄마로서 필요한 자격요건을 조금 갖춘 것 같다는 말처럼 들려 겸연쩍어하고 있는데 사촌동생이 말을 이었다.

"아기가 조금만 아파도 진짜 우울하잖아.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고."

이제껏 한 번도 꺼낸 적 없던 엄마의 마음을 털어놓는 사촌동생과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공감했다.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보다 먼저 겪은 선배 엄마의 "그러다 곧 괜찮아지더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됨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단 한 번 아프다는 말을 한 적이 없던 우리 엄마, 늘 건강한 줄로만 알았는데 어쩌면 몸보다 마음이 더 자주 아팠겠다. 그 마음 서로 털어놓으며 위로가 되는 누군가가 엄마 옆에도 있었기를, 뒤늦게 바라본다.


아이의 울음이야 예사로운 일이지만 오늘의 울음은 어쩐지 더 짠하다. 우느라 체온이 올라가 피부에 자극이 될까 봐 조마조마하다. 그래서 정답이 아닌 줄 알면서도 얼른 달려가 가슴에 안아 든다. 이런 하루하루가 쌓여 나도 내 엄마 같은 엄마가 될 건가 보다.

엄마 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는 방금 팔다리를 사방으로 뻗고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자는 동안 아이의 세포들이 열심히 활동해주기를. 그래서 얼른 깨끗한 피부로 돌아오기를.

 

이전 12화 짠순이의 70만 원 충동구매 사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