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예지 Nov 12. 2019

작은 아이의 작지 않은 힘

아이와 함께 보낸 첫 명절

혼자일 때 명절은 마냥 즐거운 휴일이었고, 둘이 된 후의 명절은 부담이 뒤따라 조금은 두려운 날들이 되었다. 그렇다면 셋이 보내는 명절은 어떨까. 임신과 출산으로 한동안 찾지 못했던 고향에 간다는 기대와 아이를 동반한 장거리 여행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아이와의 첫 명절을 맞이했다.


카시트가 설치된 남편의 차에 유모차와 아기욕조, 부모님들께 드릴 선물상자까지 실어야 했으므로 나머지 짐은 최소한으로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이라 아이에게 입힐 반팔과 긴팔을 고루 챙기고, 손수건도 넉넉하게 챙기고, 기저귀도 일주일분을 챙기고, 혹시 몰라 해열제와 같은 비상약까지 챙기고 나니, 캐리어의 1/4도 채 남지 않았다.

미리 꺼내 둔 내 옷과 화장품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꼭 필요한 짐만 남기기로 했다. 수유하기 편한 면티셔츠 세장과 속옷, 그리고 칫솔 하나. 로션은 빼버렸다. 며칠쯤이야 아이 로션을 빌려 쓰면 되니까.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을 만났다. 서울에 있는 카페에서 제빵사로 일하는 동생은 연휴에 더 바쁘다. 그래서 이번에도 조금 일찍 휴무를 받아 고향에 왔다. 아이를 낳고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보니 누구를 만나도 오랜만이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전보다 더 예뻐져있었다. 머리카락은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부지런히 요가를 다닌 덕분에 몸도 건강해 보였다. 내가 동생의 안부를 물으려는 사이 동생은 아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지안이 되게 많이 컸다!"

동생의 손가락은 이미 아이의 꼬물거리는 발에 가있었다. 아직 낯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저를 빤히 바라보는 게 신기한지 동생은 연신 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어주느라 나와 남편의 존재는 잊은 듯했다.


동생과 밖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갔다. 네 살 때부터 쭉 살았던, 대학을 타지로 가면서 내 방은 사라졌지만 그 후로도 수시로 드나들던 우리 집. 이 집에 산 이래 이번만큼 긴 시간 떠나 있던 적이 없었다. 출산을 앞둔 시점부터이니 반년 이상 오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집은 눈을 감고도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익숙하고 정겨웠다. 벽에 그려진 낙서 하나까지도 모두 기억하는 곳, 가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누워있는 곳이 이 집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제법 불었지만, 아이에게 엄마가 살던 동네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그보다는 내가 걷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대문을 벗어나자마자 윗집 할머니와 마주쳤다.

"아이고. 딸내미 데려왔구나?"

할머니는 유모차 깊숙이 고개를 넣어 아이를 보셨다. 아이가 그저 신기하신지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보셨다.

이후에도 여러 어르신들과 마주쳤다. 하나같이 아이에게 시선을 빼앗겨 한참 동안 발길을 떼지 못하셨다. 귀엽네. 웃기도 잘 웃고. 아이고 순하다. 그런데 엄마는 안 닮았네? 아이를 향한 찬사에 나는 우쭐해졌다. 엄마를 닮지 않았다는 말만 빼고.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어르신들을 다 만날 때까지 동네를 열 바퀴쯤 돌았을지도 모르겠다.

낮은 출산율로 아이 보기가 쉽지 않다는 요즘, 우리 동네는 아이 보기가 더 어렵다. 동네 주민들은 대부분 내가 이사오던 30여 년 전부터 사시던 분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나처럼 고향을 떠나고 새로 들어오는 이는 없는 작은 동네. 가을철 누런 벼처럼 익어가는 마을에 파릇파릇 새싹 같은 아기가 나타났으니 눈길을 끌 수밖에.


직장에 다니시는 엄마는 아픈 다리를 재촉해가며 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아이에게 해가 될까 몸을 씻고 다가오시는 엄마의 서두름에 나는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 이어달리기에서 배턴을 전달하듯 아이를 넘겼다. 그제야 엄마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튿날에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라 맛있는 것도 먹고 마음껏 수다도 떨고 싶어 아이는 엄마에게 맡기려 했더니 친구들이 아우성이었다. 아이를 두고 가면 모임에 입장 불가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에 결국 아이를 데리고 나섰다. 그리고 아이는 모임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시댁에서도 이어졌다. 아이는 집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신 증조할아버지 침대에 떡하니 누워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관심을 끌었다. 나는 함부로 앉지도 못하던 그 자리를 아이가 차지하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할아버지 눈치를 보지 않았다. 평소에는 호랑이 같으시던 할아버지도 아이 앞에서는 한없이 인자한 어른이셨다. 아이는 모든 규칙에서 예외가 되었고, 어떤 행동도 용납되었다.

텔레비전을 향해 나란히 앉아있던 가족들은 아이가 나타나자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모여들었고 아이의 눈짓과 손짓 하나하나에 웃으며 동요했다. 아이 하나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몰고 왔다. 남편의 어린 시절이 소환되어 한참 동안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숙모는 세 자녀들이 언제부터 기고, 걷고, '엄마'를 부르기 시작했는지 기억을 떠올리셨고, 그 옆에서 사춘기에 접어든 세 남매는 자신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이번 명절에는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집안일에서 제외되는 특권을 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바빴다.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향집에서 시댁으로, 시댁에서 고향집으로, 고향집에서 다시 시댁으로 오가며 남편은 기사 노릇을, 나는 아이의 매니저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덕분에 아이의 몫으로 용돈도 두둑이 받았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은행에 가서 통장을 하나 만들어줄 생각이다.


"백 원어치로 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은?"

어릴 적 수수께끼 책에 있었던 문제다. 정답은 '양초'였는데 나는 '꽃'이라고 우겼었다. 지금 같은 수수께끼를 푼다면 내 답은 우리 '아이'. 3킬로그램도 안 되는 몸무게로 태어난 작은 아이는 우리 집을 완전히 다른 공기로 채우더니 이제는 우리 가족들의 공간마저도 바꾸어 놓았다.

명절이면 저마다 마음속에 다른 생각을 품고 있던 우리는 아이 앞에서 같은 마음으로 웃고 즐거워했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아이가 우리 모두를 세상의 때가 묻기 전 어느 때로 돌려놓은 것처럼. 아이 덕에 우리가 머무는 공간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아. 아이는 가격을 매길 수 없으니 수수께끼의 정답이 될 수는 없으려나.


아이를 서로 만지고 싶고 안아보고 싶어 차례를 기다리던 가족과 친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연휴가 지나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아이를 하루 종일 만지고 안을 수 있는 나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거겠지. 이러한 특권이 새삼 감사하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내게도 쏟아졌을 사랑과 관심에도 뒤늦게 감사하다.

이전 14화 아이의 모든 '처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