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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Feb 06. 2020

한 시간 정도는 괜찮지 않아?

이사를 준비할 때다. 둘 다 물건 욕심은 없는 편이라 꼭 필요한 것만 사기로 했는데, '꼭 필요한 것'을 추리는 지점에서 의견이 갈렸다. 문제가 되는 품목은 TV였다. 남편은 사자는 쪽이었다.

"TV는 당연히 있어야지. 당연히!"

"어차피 애 클 때까지는 못 봐. 보지도 못하는걸 두면 뭐해? 자리만 차지하지."

남편은 15년 전 제대한 군대로부터 재입영통지서라도 받은 것처럼 쩔쩔매다 궁색한 이유를 꺼냈다.

"그럼 뉴스는? 우리는 뉴스도 못 봐?"

"우리가 뉴스를 TV로 보던가? 스마트폰으로 보던 것 같은데?"

"그, 그럼. 축구는? 그건 TV로 봐야 한다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는 어쩌려고?"

"글쎄... 그건 그렇네."

일단 꼬리를 내렸다. 남편이 이겼다, 표면적으로는.


사실 내게도 TV는 필요했다. 어쩌면 남편보다 더 간절히.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드라마에 대한 내 사랑은 한순간도 식은 적이 없었다. 고3 때 방영된 '풀하우스'와 '파리의 연인'도 빼놓지 않고 모두 챙겨봤다. 대학 때는 배달음식을 먹으며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3'을 한 자리에서 주파하기도 했다. 이렇듯 지극한 드라마 사랑을 계속하려면 TV는 필수였다. 게다가 복직 전까지 내내 집에만 있을 텐데 TV조차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게?

다만 백해무익이라는 TV를 집으로 들이는 주범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반대해도 남편은 그 물건을 기필코 사게 될 남자였다. 남편이 그럴싸한 명분을 대준다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려고 했는데 2년이나 남은 월드컵을 갖고 올 줄은 몰랐다. 심지어 올림픽은 무려 4년이나 남았는데.


남편의 적극적인 환대를 받으며 들어온 TV는 거실 한쪽 벽면을 차지했다. 맞은편에는 TV를 보기 편하도록 소파를 놓았으니, 결국 거실은 TV 시청을 위한 공간으로 보아도 무방하게 되었다.

TV를 들이기로 결정하고 내심 쾌재를 불렀지만 막상 거실 한자리를 내어주고 나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TV를 처음 본 아이는 나보다 더 관심을 보였다. 전원이 들어오는 소리에 홱 고개를 돌리고 빨려 들어갈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화려한 불빛은 아이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TV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검색했다. 무서운 단어들이 쏟아졌다.

- 부모와의 소통이 줄어 타인과 상호작용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여 언어발달이 느려지고 주의력을 잃기 쉽다.

- 숙면에 방해를 받고 낮 활동에도 지장을 준다.

- 두뇌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고 학습에도 장애를 초래한다.


TV 보는 모습마저 부전여전


결국 아이가 거실에 머무는 낮시간 동안 TV는 그림의 떡이 되었다. 아이가 침실로 들어가 잠드는 시간에야 겨우 틀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의 '잠' 담당.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에는 나도 아이 옆에 누워야 했다.

TV는 늦은 밤 남편의 취미활동 용도로 활용되었다. 남편은 유튜브 영상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거실과 침실 사이의 벽을 뚫고 남편의 웃음소리가 건너올 때면 약이 올랐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본전을 생각하면 남편이라도 열심히 봐줘야 했다. 남편은 진즉에 내 속을 꿰뚫어 보고 있었을 거다. TV 구입으로 인한 궁극의 수혜자는 결국 본인이 될 것임을.

내게 TV 시청권이 주어지는 시간은 주말뿐이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 아이가 잠들면 몰래 침실에서 빠져나와 볼륨을 낮추고 영화를 보았다. 집안의 불을 몽땅 끄고 커튼도 치면 오로지 TV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만이 깜깜한 실내를 밝혔다. 극장이 따로 없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드라마를 알기 전까진.


드라마는 당분간 끊으려던 나의 의지를 꺾기로 작정했는지 라디오와 포털사이트와 온갖 SNS 채널들이 특정 드라마를 일제히 홍보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꼭 챙겨보리라 마음먹은 내게 친구들은 친절하게도 지난 줄거리와 예상 시나리오까지 읊어주었다. 대화창을 건너가 친구들의 손가락을 꽁꽁 묶어두고 싶었다. 촬영지를 직접 방문한 친구까지 있을 정도이니 보지 않고도 드라마의 인기는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하루 한 시간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번에도 내 속마음은 남편의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하루 종일 어떻게 애만 봐. TV도 좀 봐야지."

이럴 때 쓰라고 '부창부수'라는 말이 있는 거겠지. 나는 못 이기는 척 고개만 끄덕였다.


'동백꽃 필 무렵'은 본방송 다음날 오후에 재방송이 편성되었다. 소파에 앉아 빨래를 정리하며 봤다. 한편 한편이 여느 영화보다 재미있었다. 재미뿐 아니라 감동과 스릴을 두루 갖춘 작품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작가의 대본도 근사했다. 드라마를 보는 한 시간은 육아로 인한 육체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리고도 남을 만큼 달콤했다.

'동백꽃 필 무렵'은 마지막회까지 넘치는 감동을 주고 끝났다. 드라마 때문에 한주가 빨리 지나가기만 애타게 기다리는 기분을 오랜만에 맛보았다.


이후에도 종종 눈에 띄는 드라마가 있었지만 딱히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현실의 떡이 된 TV는 그림의 떡일 때보다 덜 먹음직스러웠다. 반면 남편은 TV 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요즘은 90년대 가요 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재미에 빠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리모컨을 누르는 남편을 보고도 나는 별말을 못한다. '하루 한 시간 정도는 괜찮지 않냐'던 남편의 말에 편승해 '동백꽃 필 무렵'에 열광하던 날들이 떠올라서다. 우리 남편, 어쩌면 여기까지 내다보고 그런 말을 했었는지도.


어떤 집은 아예 TV를 들이지 않았다고 하고, 어떤 집은 벽장 속에 숨겨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서 본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우리도 당장 TV를 중고거래사이트에 되팔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몸에 나쁜 걸 알면서도 술을 마시고 아침형 인간이 좋은 줄 알면서도 늦잠을 자는 유형의 사람. 남편도 마찬가지다. 당장 먹고 싶은 피자 앞에서 며칠 후의 몸무게나 몇 년 후의 건강상태에 대한 우려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린 이렇듯 머리로는 정답을 알면서도 행동은 꽤 자주 오답을 가리키는 사람들이라 육아도 모범답안대로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신 평일에는 가급적 TV 대신 라디오를 틀고, 주말에는 한두 시간 정도 정해진 프로그램만 보는 걸로 타협점을 찾았다.


다행히 아이는 처음처럼 TV에 매료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TV에 빠진 우리를 나무라듯 꽥꽥 소리를 지르거나 소리 나는 장난감을 작동시켜버린다. 가끔 아이가 넋 놓고 보는 모습이 포착되면 품에 안고 어르며 관심을 돌린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남편의 말을 떠올린다.

"하루 종일 어떻게 애만 봐. TV도 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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