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없어요?”
가게를 둘러보는 시선에서부터 분노가 느껴지는 손님이었다. 불쾌한 마음을 상대방이 알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이었다.
손님은 날 발견하곤 위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을 상대로 충분한지를 살피는 눈치다.
“어떻게 이런 엉터리 같은 모자가 다 있죠?”
손님이 내민 건 도톰한 모직소재의 베이지색 헌팅캡이었다. 진열대 맨 아래 칸에 놓여있던 모자다.
“계속 같은 메시지만 전송되잖아요. 그것도 뚱딴지같은 내용으로요.”
얼떨결에 손님이 건네는 모자를 받아들었다. 순간 담배냄새가 훅 풍겼다.
“다른 모자로 교환해주세요.”
대꾸할 말을 고르는 틈을 기다리지 못하고 손님이 다그쳤다.
“안돼요? 모자가 불량이라니까요?”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데이터 먼저 확인해볼게요.”
손님은 여전히 뾰족한 눈빛으로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았다. 나는 손님 맞은편 자리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손님이 함께 볼 수 있도록 비스듬히 돌렸다.
jini_11. 폴더를 열자 맨 위에 사용자의 프로필이 간단히 적힌 파일이 떴다.
‘40대 후반, 남자, 직장인’
나는 손님의 얼굴을 슬쩍 봤다. 40대 후반이라기엔 너무 젊어 보였다. 게다가 손님은 영락없는 여자다.
의심을 받는 건 질색이라는 듯 손님이 흥분한 어조로 상황을 설명했다.
“사용자는 저희 팀장님이에요. 며칠 전에 저랑 같이 왔어요. 그때는 사장님이 계셨고요.”
손님은 어느새 노트북 화면 쪽으로 완전히 몸을 틀고 있었다. 화면에서 떨어질줄 모르는 손님의 시선이 날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jini_11’를 끌어다 ‘오류검증프로그램’에 넣었다.
프로그램은 암호화된 생각데이터를 순식간에 텍스트로 바꿔놓았다. 데이터의 양이 많지는 않았다. 상세정보를 확인해보니 모자 사용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손님은 신기한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화면을 바라보다가 문득 여기에 온 목적을 깨달았는지 정색하며 말했다.
“이것 보세요. 같은 메시지가 반복되잖아요. 여기도, 또 여기도.”
손님이 화면 속 데이터의 일부를 가리켰다. 손님의 말은 사실이었다. 스크롤을 쭉 내려 보니 데이터의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단어 하나가 반복되고 있었다.
“손님, 우선 사용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을 먼저 알아야......”
손님이 답답하다는 투로 내 말을 잘랐다.
“전혀요. 저런 단어가 떠오를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어요. 팀장님이 모자를 쓰고 있던 곳은 회의실이었다고요. 우린 회의 중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