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저녁 단식 실험기 : Day 1
162cm에 49kg.
고3부터 30대 초까지 쭉 유지해 온 체중이었다.
떡볶이, 치킨, 피자, 닭발을 주식 삼아 먹고도
늘 같은 체격을 유지하는 날 보고
몰래 다이어트라도 하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다.
좀 얄밉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마음껏 먹고 마시고
운동이라곤 숨쉬기가 전부이면서도
살이 찌지 않았으니까.
나이가 들면 살이 찐다는 선배들 말을 듣고도
솔직히 별 걱정이 안 되었다.
평생 살이 안 쪄서 걱정이신 울 아빠가 있었으니까.
아빠를 닮아 나도 '살 안 찌는 체질'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출산 후에도 큰 이변은 없었다.
첫째를 임신하고 13kg이 늘었던 몸무게는
출산 후 점차 제자리로 돌아왔고
둘째 임신 후 다시 늘었지만 또 제자리로 돌아왔다.
살 안 찌는 체질.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날씬할 수 있는 특권.
그게 더 이상 내 것이 아님을 깨달은 건
둘째 출산 후 2년이 지났을 무렵부터였다.
체중계에 올라갈 때마다 200g, 300g씩 늘어있었고
바지들이 하나 둘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불편한 건 바지뿐이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체중증가에 마음도 당황스러웠다.
식습관도 활동량도 그대로인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첫째부터 둘째까지 이어졌던 모유수유를 끊은 탓일까?
아니면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나잇살'일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늘어가는 체중을 어영부영 외면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집 상태를 못마땅해하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아이들의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미적대듯
내 몸이 불어나는 걸 알고도 방치하고 있었다.
육아와 업무로도 충분히 바빠서
뭔가 시도해 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러는 사이 몸무게는 5kg이나 늘어버렸다.
그러다 지난 연휴, 모처럼 방문한 고향에서
내 가장 오래된 팬으로부터
급기야 충격적인 말을 듣고 말았다.
딸내미 배 많이 나왔데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예외 없이
내가 세상 제일 예쁘다고 추켜세워주던 엄마였다.
세상의 주관적인 기준 따위 모르고
자기 딸이 그저 최고인 줄 아는 엄마 입에서 나온
살쪘다는 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흔 언저리가 되면서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드는 요즘이었다.
육아방식와 회사생활, 돈 관리습관, 말버릇까지
달라져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 몸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내가
도대체 뭘 바꿀 수 있을까?
고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남편에게 선언했다.
나 오늘부터 저녁 안 먹을 거야.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다.
귀찮다는 변명도 안 통한다.
새로 뭔가를 시도하는 게 아니라
늘 해오던 걸 멈추면 되는 거니까.
저녁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 먹기.
딱 20일 동안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20일 저녁 단식 실험기 1일차 체중 : 54.2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