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나를 부른다. '엄마'하고. 사실 '엄마'의 의미를 알고 부른 것 같지는 않고, 내가 꾸준히 유도한 결과다.
아이는 두어 달 전부터 '어버버', '음마마' 하는 소리를 발음하더니 어느 날에는 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입에서 먹는 것 이외의 쓸모를 발견한 아이. 저도 제 입이 신기한 모양이다. 불현듯 혼자서 입을 뻐끔거린다.
아이의 '엄마' 소리는 내게도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이다. 세상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단어가 있는데 아이가 가장 먼저 소리 내는 단어가 '엄마'라는 게 놀랍다. 혀의 구조가 '엄마'라는 단어를 발음하기 적합해서 아이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 '엄마'라고 이름 붙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은데, 지금은 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엄마'가 되어 나온 거라 믿고 싶다.
말을 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아이와 9개월을 함께 보냈다. 아이에게 '말'이라는 의사표현 수단이 아직은 없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잘 소통하고 있다.
손가락을 빨면? 배가 고프다, 눈을 비비면? 졸리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힘을 줄 때는? 똥을 싼다.
그 밖에도 안기고 싶어 하거나 지루해할 때, 짜증 날 때의 행동도 이제는 구별이 된다. 아이의 요구가 다양해진 만큼 내가 이해하는 감정과 상황도 다양해졌다.
아이와 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의 감정과 필요를 전달해주는 연결고리. 한번 만들어진 이 연결고리는 언어로 소통이 가능해진 후에도 평생 유지될 걸 안다. 우리 엄마와 나 사이의 연결고리처럼.
어릴 때부터 엄마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솔직해야 한다고 워낙 강조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엄마에게 거짓말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중학교 때 딱 한 번 거짓말을 했을 때 엄마는 마치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절망적인 표정을 보여주셨다. 그 뒤로는 거짓말 대신 '말하지 않기' 수법을 주로 썼는데 그마저도 엄마에게는 파악되고 있었다는 걸 어른이 되고 엄마의 회상을 통해 알았다.
엄마 앞에서는 늘 조심스러웠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거나,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가급적 엄마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엄마는 내 얼굴만 보고도 다 알아버릴 것 같아서. 하지만 몸이 떨어져 있어도 엄마는 알았다. 마치 우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통해 나쁜 감정은 모두 가져가 버리려는 듯 엄마는 내 몫의 걱정까지 대신했다. 결혼 초 목감기에 걸렸는데 남편이 몰라줘서 내심 서운했던 날, 전화를 받자마자 "감기 걸렸네"하고 내 상태를 바로 알아준 사람도 엄마였다.
아이는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가 눈에 보이지 않아 아직 불안한 모양이다. 나를 항상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싶어 한다. 안방에서 서랍을 정리하고 있으면 슬그머니 따라온다. 주방으로 이동해 설거지를 하면 어느새 또 다가와 내 발등을 혀로 간지럽힌다.
아빠와 잘 놀다가도 밤이 되면 꼭 나를 찾는다. 내가 머리를 말리며 서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서럽게 운다. 내 품에서 편안히 잠들고, 아침에는 내 존재를 확인하며 안도한다. 그 모든 순간 아이의 감정은 내게도 전해진다. 아이가 행복해하면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진다.
내가 느끼는 이 연결고리, 어쩌면 사람들이 말하는 '모성애'가 아닐까.
한동안 나는 모성애라는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엄마라고 자책했다. 조리원 신생아실에서 다른 아이를 내 아이로 착각하기도 하고, 수유시간 알람을 잠결에 꺼버려서 아이를 6시간이나 굶긴 적도 있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도 내 무릎의 통증이 걱정되던 나는 어쩐지 모성애와는 한참 거리가 먼 엄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모성애도 결국 사랑의 한 형태. 처음부터 활활 타오르는 사랑도 있지만 잔잔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사랑도 있다. 그러니 심장소리만 듣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도 있는 반면, 아이와 함께 조금씩 성장하며 진짜 엄마가 되는 서툰 엄마도 있는 거겠지.
내게는 모성애라는 감정이 이렇게 찾아오나 보다. 아이가 환한 웃음을 지어줄 때 한 숟갈,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눈빛으로 바라봐줄 때 또 한 숟갈, '엄마' 하고 불러줄 때는 한 백 숟갈?
아이가 깼다. 연결고리를 통해 전해온 지금 아이의 목소리는 '엄마, 배고파요. 그리고 사랑해요'.
문득 아이가 아직 글을 읽지 못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이 글을 읽으면 비웃을 것 같다. 제 생각과 의도를 절반도 모르면서 아는 체 말라고. 어쩌면 아이는 내가 천천히 엄마가 되어가는 이 시간, 서툰 엄마를 견디며 인내심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지나면 말은 통하겠지만 지금보다 서로를 더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날도 오겠지. 그때는 아이의 언어를 내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었던 지금이 그리울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