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서 미안해

by 귤예지

서울 사는 동생이 휴가를 내고 우리 집에 왔다.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한참을 걸어서 왔다. 감기에 걸린 아이가 걱정되어 나는 현관문 밖까지도 마중을 나가지 못했다. 동생의 양손에는 조카에게 줄 선물과 내가 좋아하는 빵이 들려있었다.

우리 집에 머물던 일주일, 동생은 하루 세 번씩 설거지를 하고 수시로 거실을 정리했다. 그런 동생에게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요리 하나 대접하지 못했다. 아이가 며칠째 감기를 달고 있어 외출은 꿈도 꾸지 못했다. 동생은 낯선 도시를 구경하겠노라며 떠나기 하루 전날 혼자 집을 나섰다. 몇 시간 후 돌아온 동생의 손에는 또 내 몫의 빵이 들려있었다.

사랑을 주렁주렁 달고 왔던 동생의 두 손은 빈손이 되어, 오히려 감기만 얻어 떠났다. 떠날 때도 나는 집안에서 그녀를 배웅했다. 동생이 떠나고 한참 동안 마음이 묵직했다. 미안함 때문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미안할 사정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미안하다'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을 볼 때면 '애초에 미안할 행동을 말지' 생각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내 입에서 자꾸 '미안하다'는 말이 나온다. 미안할 사정이 자꾸 생긴다. 모처럼 딸을 찾아 먼길을 달려온 부모님께도 미안하다.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 미안하고, 늦은 밤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시게 만든 것도 미안하다. 살림을 절반쯤 내려놓은 딸 대신 욕실 청소를 하시다 들키셨을 때는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 오히려 성질을 부리고 말았다.


외출하는 날, 가방에는 아이 기저귀를 챙기고 목구멍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넉넉하게 챙겨둬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이 단골처럼 쓰일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는 약속시간 두시간 전부터 준비를 하는 습관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을 때가 더러 있다. 아이의 낮잠이 평소보다 늦어져 약속시간을 미뤄야 할 때도 있고, 유모차에 태우기 직전에 뿌직, 소리에 브레이크가 걸릴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바빠져 더 서두르게 되고, 그게 불편해진 아이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며 외투도 유모차도 거부해버린다. 결국 서툰 엄마는 약속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미안. 나 좀 늦을 것 같아.ㅠㅠ 먼저 먹고 있어."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식당은 좌식이다. 먹고 싶은 메뉴를 양보하고 아이를 위해 선택해준 곳이다. 테이블 위에는 음식들이 막 세팅되고 있다. 그때 접시 위로 정신없이 뻗는 손. 예쁘게 세팅되었던 접시들은 아이의 손을 피해 아무렇게나 재배열되었다. 음식점에 오면 늘 항공샷을 찍던 친구는 사진찍기를 일찌감치 포기했다.

"미안. 정신없지."

벌써 두 번째 '미안'이다.

이제 각자 준비해온 이야기들이 테이블 위로 막 쏟아지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돌고래 한 마리. 괴성의 주인공은 역시 우리 아이다. 엄마와 이모들의 관심이 저에게서 떠난 것처럼 느꼈나 보다. 식당 전체의 관심을 모아보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계속되는 괴성에 종업원을 비롯해 손님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아우. 죄송합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이렇게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세 번째 '미안'. 결국 나는 아이를 안고 일어섰다. 친구들도 덩달아 허겁지겁 식사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아이는 미안하다고 말하게 되는 상황의 원인제공자인 동시에 면죄부이기도 하다. 소란에 우리 쪽을 쳐다보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를 발견하고 나면 너그러이 웃어준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친구는 익히 알기 때문에 이해해주고, 경험이 없는 친구는 미리 연습해보고 싶다는 말로 미안함을 덜어준다. 덕분에 때로는 민폐가 될 줄 알면서도 유모차를 끌고 밖으로 나올 용기가 생긴다.


어제는 집 앞 김밥집에 갔다. 애매한 시간이라 손님은 나 하나였다. 바쁜 점심시간을 보내고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던 사장님 부부가 유모차를 보시더니 반색을 하며 다가오셨다. 하필 아이는 낮잠을 자는 중이었다. 연세 지긋하신 사장님이 주방을 향해 신호를 보내셨다. 쉿. 아이가 자고 있어. 가게를 나올 때는 손이 부족한 나를 위해 직접 문을 열고 유모차를 꺼내 주기도 하셨다.

세상인심이 각박하다지만 내가 만난 이웃들은 아이가 울면 언짢아하기보다 안타까워해주시는 분들이었다. 우리 부부가 밥을 먹는 동안 아이가 심심해하자 소독된 물컵을 가져다주셨던 어느 찜닭집 사장님은 아이가 그 물컵을 떨어뜨려 요란한 소리가 나자 플라스틱 컵을 다시 갖다 주시기도 했다.

미안함 뒤에는 고마움이 따른다. 모임이 예전 같지 않아 져서 미안했던 마음은 친구들의 배려에 가벼워지고, 아이 때문에 남의 영업을 방해하게 될까 우려했던 마음은 밖으로 나올 때면 고마움으로 변해있다.


이제 막 짚고 일어서기 시작한 아이는 몇 달 후면 걸을 테고, 걷기에 익숙해지면 집에서나 밖에서나 쿵쿵쿵 뛰어다니려 하겠지. 그뿐일까. 회사로 돌아가면 본의 아니게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할 일도 많을 것 같다. 당분간은 목구멍에 늘 '미안합니다'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 싶다.


마음으로, 그리고 입으로 수차례 '미안하다'는 말을 했던 날 밤에도 아이는 천사 같은 모습으로 자고 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심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뒤늦게 마음에 걸린다. 사실은 내가 원해서 친구들을 만나고 외식을 감행한 거면서. 여기저기 따라다니며 저도 저대로 피곤했을 텐데 말이다.

세상에 아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가 받는 따뜻한 시선, 이웃들의 너그러운 이해와 배려를 나도 다른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 훗날 어디선가 아이의 소란에 난처해하는 엄마를 만나면 "아이 덕분에 주변이 환해졌네. 고마워요."라고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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