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중에서도 가장 부드럽다는 안심. 손가락 두 개 너비에 5밀리미터도 채 안 되는 두께의 고기가 딱 네 점 들어있다. 가격표를 슬쩍 보니 '10,000원'. 입이 쩍 벌어지려는 걸 애써 숨기며 묻는다.
"사장님, 이 고기 미역국에 넣어도 돼요?"
'국에다 뭣하러 그 비싼 걸?' 싶은 듯 의아한 표정을 짓던 정육점 사장님은 유모차에 탄 14개월 아이를 보시더니 납득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이신다.
"암요, 되다마다요. 없어서 못 넣지요."
"그럼 세 팩만 주세요. 아니, 네 팩이요."
포장을 벗겨낸 고기를 조심조심 냄비에 옮긴다. 팩에 남은 살점이 더 이상 없다는 걸 확인하고 고기가 잠길 정도의 물을 냄비에 받는다.
핏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미역을 불린다. 거칠고 투박하게 생긴 미역은 엄마가 보내주신 거다. 5분 거리의 마트에 가면 손질된 미역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인데, 엄마는 미역 중 최고로 친다는 이 지방 미역을 구하기 위해 몇 주를 기다리셨다고 한다. 그 성의에 비해 우리 집에서는 여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최고라는 미역의 위력을 이번에 제대로 발휘해주길 고대하며 아자자, 기다란 미역의 한쪽 끝을 쥐고 툭 부러뜨렸다. 한 줌도 안 되는 양이다. 신혼 때의 나는 10인분의 미역국을 끓이는 실수를 곧잘 저질렀지만 이제는 안다. 마른미역이 감추고 있는 잠재력을.
두 시간 후 새빨갛게 배어 나온 핏물을 따라내고 새 물을 받는다. 강한 불에서 10분쯤 끓이면 고기 육수가 진하게 우러나온다. 잘 익은 고기를 건져 다지기에 넣는다. 그사이 국그릇 가득 불어난 미역도 물에 헹구어낸 뒤 함께 넣는다.
아, 뒤늦게 생각났다. 표고버섯! 엄마가 며칠을 햇빛 아래 꺼냈다 들였다 하며 말리시고 아빠가 몇 시간 동안 몸을 구부린 채 손질해 보내주신 표고버섯이 냉동실에 있었다. 한 줌 꺼내 물에 담가 두니 금방 통통해졌다.
삶은 고기와 미역이 들어있는 다지기에 물기 짜낸 표고버섯을 넣는다. 버튼을 누르자 위이잉 소리를 내며 세 가지 재료가 순식간에 섞여 새끼손톱 절반 크기로 다져졌다.
자 이제 준비 끝. 고기 육수에 다져진 재료를 몽땅 털어 넣고 푹 끓인다.
선반 위 간장병으로 향하는 시선을 애써 붙잡는다. 두 돌 전에는 소금과 간장을 쓰지 말라는 소아과 선생님 말씀 때문이다. 마늘과 참기름의 유혹도 과감히 뿌리친다. 우리 아이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재료들이다.
대신 물에 헹군 다시마 한 장과 건멸치 서너 마리를 넣는다. 보글보글 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거품을 걷어내고 뚜껑을 덮어둔다.
아이는 돌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이유식을 거부했다. 또래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재료와 요리법을 찾아 이것저것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 입 물고 우물거리다 입을 꾹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모유를 주로 먹는 아이들은 철분 부족으로 빈혈이 올 수 있어 고기는 특별히 잘 챙겨 먹여야 한다. 하지만 아이는 고기의 질감이 영 별로인지 가까이만 가져가도 고개를 돌렸다. 구워도 보고 볶아도 보고 밥 사이에 숨겨도 봤지만 모두 실패였다. 마침내 삶은 고기를 갈아 요거트에 넣는 엽기적인 메뉴까지 개발했지만 아이가 그나마 잘 먹던 요거트마저 거부할 지경이 되어 관두었다.
철분을 보충할 대체식품을 찾다가 미역국을 떠올렸다.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을, 동지에는 팥죽을 꼬박꼬박 챙기는 엄마가 내 생일마다 해주시던 음식이다. 엄마와 떨어져 살았던 열다섯 번의 생일에도
"언제 올래?"
부름을 받고 간 고향집 밥상에는 늘 미역국이 있었다.
엄마의 미역국에는 푹 삶는 대신 참기름에 달달 볶은 쫀득한 소고기가 들어갔고 마늘과 간장도 딱 먹기 좋게 들어갔다. 그럼에도 생일마다 먹는 미역국은 특별한 음식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내 그릇 위에만 소복이 쌓인 소고기는 때때로 해치워야 하는 과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생일이 아니고서는 일부러 미역국을 찾아먹는 일이 없었다. 피자나 치킨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먹으면서도 미역국은 1년을 통틀어 두세 번 먹는 게 전부였다.
출산 후에는 좋아하지도 않는 미역국을 하루 세 번씩 먹어야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로 커다란 대접에 든 미역국을. 조개, 황태살, 소고기 등으로 부재료는 종종 바뀌었지만 미역국은 그래 봤자 미역국이었다. 조리원을 나오며 지긋지긋한 미역국과도 작별을 선언했다.
그랬던 내가 직접 미역국을 끓이게 될 줄이야.
흰쌀밥 위에 적당히 식힌 국물을 끼얹는다. 연둣빛으로 뭉그러진 밥을 한 숟가락 떠 아이 입에 넣는다. 마음은 이미 아이에게 거부당할 것을 절반쯤 각오했다. 안 먹으면 소금 쳐서 내가 먹지 뭐.
그런데 웬걸, 한입 받아먹은 아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고개를 홱 돌려버릴 타이밍인데 말이다. 참기름과 마늘과 간장 대신 넣은, 아이가 잘 먹어주기를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소망을 눈치라도 챈 걸까.
어쩌면 아이는 미역국을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고통과 감격 사이를 오가던 조리원에서 하루 세 번씩 먹었던 미역국이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도 흘러들어 갔을 테니까. 미역국 한 숟가락은 내게 그랬듯 아이를 우리가 처음 만난 시간으로 잠시 데려다주었나보다.
이유야 무엇이든 일단 아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신이 난 숟가락은 속도를 높인다. 이번에는 고기와 버섯과 미역까지 야무지게 올렸다. 물 들어올 때 부지런히 노를 젓자. 아이의 태도가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마지막 한 숟가락이 아이의 입을 통해 목구멍까지 무사히 넘어간 걸 확인하고서는 단지 그 이유 하나로 하루 종일 행복해진다.
어쩌면 엄마도 그랬을지 모른다. 내게 미역국을 끓여줄 때마다 엄마의 그 시절, 나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몸은 고통스러워도 마음은 한없이 감격스럽던 그때 생각에 내 생일이면 잊지 않고 미역국을 끓이는 걸지도. 그리고 엄마는 비어 가는 내 그릇을 보며 마음이 행복으로 차오르는 걸 느꼈을 거다.
벌써 세 번째 만드는 미역국. 푹 끓인 뽀얀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어본다. 밍밍한 것이 이전의 나라면 딱 뱉고 싶어 했을 맛이다. 하지만 아이가 입을 '아~'벌리고 받아먹는 상상에 마음은 벌써부터 행복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