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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입

복직 첫날, 나를 제외한 모두가 대단해 보인다

by 귤예지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한 회사, 출입문은 단단히 잠겨있다. 내가 없는 1년 사이 회사는 이름을 바꾸었다. 예전 이름이 새겨진 내 사원증으로는 이 문을 통과할 수 없다. 옆 부서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넣어본다.

"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저희 사무실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예상치 못한 방문객에 놀란 듯 남자는 벌떡 일어서더니 쭈뼛쭈뼛 말한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첫 출근이라 사원증이 아직......"

신입사원인가. 이제 보니 남자의 옷차림과 말투에도 내 것과 같은 종류의 긴장감이 묻어있다. 처음 본 사람이지만 어쩐지 동지애 같은 게 느껴져 응원의 눈빛을 보내고 돌아섰다.


20분쯤 지나 드디어 문이 열렸다. 묻지 않고도 내 자리를 금방 찾았다. 포장된 컴퓨터가 올라와있었다. 박스를 풀고 비닐포장을 뜯으며 괜히 설렌다. 새 컴퓨터로 열심히 일해야지, 휴직 전보다 더 잘해야지. 열정이 마구 샘솟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좌절모드 시작이다.

"저기... 혹시... 인터넷 연결이 안 돼서 그러는데 한번 봐주시겠어요?"

뒷자리에 앉은 박 대리가 선뜻 옆으로 와주었다. 조금 전 출근하면서 나를 돕겠다고 먼저 나서 준 5년 후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도움받을걸. 혼자 할 수 있다며 당당하게 말했던 조금 전의 내가 부끄러워진다.

박 대리만으로도 부족해 본사 전산실까지 동원해 어찌어찌 컴퓨터는 세팅했다. 업무사이트와 메일 계정의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한바탕 소동 끝에 접속했을 때는 이미 2시간이 지나있었다.


새 컴퓨터의 포장을 뜯으며 괜히 설렌다. 열정이 마구 샘솟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년 만에 복귀한 회사에서는 모든 게 두렵다. 전화벨만 울려도 어깨가 한껏 움츠려 든다. 신입 때 옆팀 팀장님이셨던 지금의 부서장님이 "그때 우리 거기 갔었잖아" 하며 친근감의 표시로 건네시는 말조차 휴직기간 동안 내 기억력이 얼마나 쇠퇴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처럼 들린다. 내가 모르는 업무 이야기, 내가 모르는 사람 이야기. 심지어 회사 앞 식당도 간판을 바꿨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전지전능해 보인다. 매끄럽게 전화를 받는 청년인턴과 아르바이트생도 지금 내게는 경외의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전지전능한 사람은 전임자. 그의 빈자리를 부서의 모두가 느끼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은 그와 함께 있지도 않았던 나다. 그를 찾는 전화만 벌써 몇 통째. 첫 회의 주제는 '포스트 이XX(전임자) 시대의 대처법'. 코로나만큼이나 영향력이 컸던 그였음이 분명하다.


새 부서에서는 5년 전에 손을 뗀 생소한 업무를 맡았다. 심지어 전임자에게 있던 '총괄'이라는 책임까지 부여받았다. 총괄은 맨 앞에 서서 핸들을 조작하는 자리다. 두 손은 노를 젓는 방법도 까먹었는데 핸들을 조작하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만 하다 하루를 다 보냈다.


차라리 신입일 때가 편했지. 그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건 어떻게 하면 돼요 선배님?" 한 마디만 하면 대부분의 일은 해결이 됐으니까. 하지만 지금 옆에는 실수도 잔소리 몇 번으로 넘어가 주던 선배들이 없다. 함께 일할 동료들은 얼른 내가 제자리를 찾아주기만 기다리는, 나의 등장으로 자신들의 퇴근시간이 늦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후배들이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마지막까지 남았다. 더 이상 전화벨도 울리지 않는다.

그래, 휴직 중에 회사생활을 그릴 때면 늘 탕비실을 떠올렸었는데 한 번을 못 갔네. 탕비실로 들어가 종이컵에 시원한 물을 한잔 받아마셨다. 이 공간에 혼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새삼 복직이 실감 난다.


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하루도 결국은 지나갔다.

내일은 조금 더 낫겠지. 참, 내일 출근할 때는 머그컵 하나 챙겨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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