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프로젝트?!?
회사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직원들 모니터에 노란 캐릭터가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또 이상한 캐릭터 시뮬레이션 하고 있나'
회사에서는 여러 프로젝트를 맞물리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었기에 크리처가 들어간 영화를 준비하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다시 제가 속해있는 프로젝트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스카이 스크래퍼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전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해 있었거든요. 보통 이런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옮겨 다니며 일손이 부족한 프로젝트가 있다면 잠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회사 내에 프로젝트 지속 여부에 따라 계약을 3개월에서 6개월씩 연장해 가는 방식으로 다들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옆자리에 친구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헤이 사쿠, 피카츄 봤어? 너무 귀엽지?'
'응?, 피카츄?'
초등학교 시절, 겨울방학중에 작은 고모네 집으로 한 달간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촌이 빌려온 비디오 테이프에서 포켓몬스터라는 만화를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빌려온 동안 아마 수십 번은 돌려봤을 거예요. 캐터피가 단데기가 되어 버터플이 되는 에피소드를 아직도 기억하니까요. 어쨌든, 그 포켓몬스터에 피카츄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그리고는 그 친구와 회사 프로젝트 폴더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은 시뮬레이션 중이지만 분명 피카츄의 모습을 한 캐릭터를 볼 수 있었거든요.
실제 작업물 모습은 아니지만, 이런 모습이었어요. 아직 복슬복슬한 털이 입혀지기 전의 캐릭터의 모습이었죠.
'뭐야 왜 이렇게 귀여워!!!!!!'
'사쿠, 나 다음에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 너무 귀엽지?, 넌 어떤 프로젝트하고 싶니?'
'난 다른 프로젝트....'
사실 회사 내에서 다른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거든요. DC 코믹스의 영화였는데,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그 영화로 배정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프로덕션 매니저가 잠시 미팅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리고는 미팅룸으로 향했죠.
'이번 프로젝트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해 줄 수 있겠니?'
'당연하지, 어떤 프로젝트인데?'
'다음 프로젝트는 '디텍티브 피카츄' 야.'
'아하....... 혹시 DC 영화로 배정될 순 없을까?'
한번 물어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말을 건넸습니다.
'한번 확인은 해볼게.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이미 인원이 다 차 있어서, 확신할 수는 없어.'
'응 나는 피카츄도 좋아, 한번 알아보고 알려줘.'
사실 이 정도면 프로젝트 배정이 확정되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매니저의 답변이나 다시 알아봐 주겠다는 말들로 위안을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날부터 이 영화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포켓몬 프랜차이즈 중 첫 실사화'
'라이언 레이놀즈가 피카츄?!'
'극장판 '실사' 포켓몬 2019년 5월 개봉'
'포켓몬go 대박효과, 실사영화 가시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재밌겠는걸?'
이미 다양한 기사들이 나와있었고, 지금 내가 이 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 기회나 다름없었습니다. 예전부터 쭉 생각해 왔던 것들 중 하나가 '내 조카들에게 삼촌이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려주고 싶다' 였거든요. 아직 어린 조카들에게 폭발하고 피 터지는 영화들을 알려줄 수 없었는데, 이 영화는 충분히 알려줄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제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작업할 수 있으니, 흥미진진한 프로젝트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프로덕션 매니저와 다시 미팅을 가졌습니다.
'헤이 사쿠, 아무래도 다른 프로젝트 참여는 힘들 것 같아. 피카츄 프로젝트는 생각해 봤니?'
'응, 나 이 프로젝트 너무 하고 싶어. 참여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그럼 지금 프로젝트 끝나고 이 날부터 피카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걸로 할게.'
이렇게 저의 두 번째 프로젝트는 'Detective Pikachu', 한국명 '명탐정 피카츄' 로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이동 첫째 날.
회사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들을 훑어보고 있던 중, 컴프 슈퍼바이저가 제 자리로 왔습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 주었죠. 첫 번째 예고편 날짜는 이날 이날이고, 그 중간에 클라이언트 쪽에 컨펌받아야 하는 내용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등등. 많은 내용들을 알려주긴 했는데, 전부 캐치할 순 없었습니다. 이제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자리로 찾아가서 내용들을 더블체크하는 수밖에 없었죠.
이미 언어에서부터 점수를 깎아먹고 들어간다는 느낌 때문에 더욱 결과물을 잘 뽑아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초반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컴프 슈퍼바이저나 컴프 리드들이 할 일이 많았죠. 다른 부서와의 파이프라인 체크와 컴프팀 내에서 사용할 템플릿이라던지 각종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조급함과 초조함이 슬슬 올라올 즈음, 컴프 슈퍼바이저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헤이 사쿠, 간단한 업무인데, 이 것 좀 해줄 수 있을까?'
클라이언트 쪽으로 보내서 컨펌받아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예고편에 들어가야 할 장면이라더군요. 엄청난 테크닉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그 장면의 분위기만 연출해서 보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면에 필요한 소스들은 이미 다 준비되어 있었고요.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다음 피드백을 받을 목적으로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간단한 몇 번의 수정 후에 그 장면을 클라이언트 쪽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컴프슈퍼바이저가 제 자리로 오더니 알려주더군요.
'헤이 사쿠, 클라이언트 쪽에서 그 장면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하는데, 잘했어!'
'응?'
이 날부터 그 장면은 제가 맡아서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 편집본을 보고 알게 되었죠. 이 장면이 첫 예고편에 첫 장면이라는 것을요.
두근두근, 피카츄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